2025년, 중산층은 더 이상 사회의 ‘기본값’이 아니다. 한때 국가의 경제를 떠받치는 핵심 계층이자 안정과 균형의 상징이었던 중산층은 전 세계적으로 축소되고 있으며, 특히 경제적 불안정성과 자산 격차가 동시에 심화되는 구조 속에서 그 기반이 빠르게 흔들리고 있다.
미국은 팬데믹 이후 3년 만에 중산층의 비율이 50% 아래로 떨어졌고, 한국 역시 자가 주택 보유 여부에 따라 명확히 갈리는 이중 구조 속에서 실질적 중산층의 개념이 붕괴되고 있다. 유럽과 일본, 동남아 등도 예외는 아니다. 저성장, 고물가, 고금리의 삼중고가 서민 경제를 압박하면서,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사실상 멈춰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 중산층은 열심히 일하면 집을 사고, 자녀 교육에 투자하며, 노후를 대비할 수 있다는 신뢰를 기반으로 형성되었다. 그들은 경제활동의 중심이었고, 정치적 균형추였으며, 소비 시장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실질 임금은 정체된 반면, 주거비와 교육비, 의료비, 금융 비용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청년층은 취업에 성공해도 독립이 어렵고, 중장년층은 집 한 채를 갖고 있어도 노후가 불안하다. 자산이 없는 중산층은 더 이상 중산층이 아니며, 가진 자산이 없다면 사회 안전망조차 온전히 닿지 않는다. 그렇게 중산층은 ‘소득 계층’이 아니라 ‘불안정한 상태’를 의미하는 말이 되어가고 있다.
이 구조적 붕괴는 단순한 경제 지표 이상의 함의를 가진다. 중산층의 약화는 민주주의의 기반을 흔든다. 중산층은 역사적으로 ‘사회의 중심을 구성하는 경험을 공유한 다수’였기에 정치적 관용과 균형, 사회적 연대를 가능하게 했고, 급진적인 이념에 대한 방어선 역할도 수행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양극화된 자산 구조와 세습화된 계급 체계는 사회 전반에 허탈과 불신을 낳고 있고, 그 공백을 급진적 포퓰리즘과 극단적 혐오 정치가 파고들고 있다. 극우와 극좌의 확산, 혐오 발언의 정치화, 음모론의 확산, 반지성주의의 득세는 모두 붕괴된 중산층의 빈자리를 대체하는 사회적 증상이다.
경제 구조 역시 이 붕괴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산업 구조는 점점 더 기술 집약적이고 자본 편향적으로 바뀌고 있다. 플랫폼 경제는 일자리를 줄이는 대신 효율을 높였고, 자산을 가진 이들은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 더 많은 기회를 확보하고 있다.
반면 노동 시장의 유연화는 불안정 노동을 확산시켰고, 성과 중심의 기업 문화는 중간층을 압박하며 ‘상향 안정, 하향 추락’의 구조를 고착시켰다. 한때 사다리를 오를 수 있던 길목은 막혔고, 중간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 결과, 사회는 점점 더 두터운 상층과 넓은 하층의 이중구조로 굳어지고 있다.
이제 중산층은 ‘희망의 상징’이 아니라 ‘사라지는 기억’이 되었다. 청년들은 자신이 부모보다 잘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잃었고, 40대는 집과 일, 자녀 교육 사이에서 끝없는 줄타기를 하고 있으며, 60대는 은퇴 후의 삶이 추락이 아닌가 두려워한다.
사다리는 구조가 아니라 신화가 되었고, 근면과 성실은 보상보다 체념으로 이어지는 단어가 되었다. 국가가 아무리 경제지표의 회복을 말해도, 개인의 삶은 여전히 고립되어 있으며, 구조적 개선보다 순간적인 정책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성경은 공동체 안에서의 공평함과 질서를 끊임없이 강조해왔다. 소외된 자와 약한 자, 노동자와 타국인, 고아와 과부에게까지 법적·경제적 안전망을 제공한 율법은 ‘가진 자가 더 갖는 구조’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질서’를 지향했다.
희년의 제도는 땅과 자산, 빚까지도 재조정함으로써 구조적 계층 고착화를 막고자 했다. 성경적 정의는 단순히 선한 행위가 아니라, 약자의 회복이 가능한 질서를 포함한다. 지금의 중산층 붕괴는 단순히 경제적 손실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회복 불가능한 구조로 고착되어가고 있다는 영적 경고이기도 하다.
오늘날 사라지는 것은 단지 소득의 균형이 아니라, 구조 안에서의 희망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질서 속에서 공동체는 함께 걸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고, 경제는 생명을 살리는 방향으로 흐를 때 정의롭다. 부유한 자만이 보호받고, 가난한 자는 벗어날 방법조차 찾지 못하는 사회는 스스로의 생명력을 상실해간다.
교회는 그 흐름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 되며,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질서가 어떻게 세워지는가를 시대 속에서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이 구조를 다시 묻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는 단지 ‘태어나는 것’만으로도 빚진 삶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공정하지 않은 구조는 지속되지 않는다
중산층의 몰락은 단지 한 계층의 위기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 전체가 위로도, 아래로도 이동하지 못하는 ‘고정된 구조’로 변했다는 신호이며, 그 구조는 점점 더 유연성과 연대 가능성을 상실하고 있다.
공정하지 않은 질서는 버티지 못하고, 회복이 없는 구조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다시 물어야 할 때다. 이 사회는 다음 세대를 위한 자리를 남기고 있는가. 모든 것이 가속화되는 세계에서, 더 늦기 전에 우리는 구조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인가. 질문이 멈추는 순간, 붕괴는 더 이상 소리 내지 않는다.
작성자: 이시온 | 매일말씀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