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스라엘의 교육 제도와 성경 교육 – 말씀을 세대에 전하라

 

오늘날 기독교 교육의 뿌리를 추적하면, 그 기원은 단순한 종교 훈련이 아닌 ‘말씀 중심의 공동체 교육’으로 출발한 고대 이스라엘의 교육 제도에 닿는다. 성경은 단지 하나님의 뜻을 기록한 책이 아니라, 세대 간 계승을 명령받은 ‘말씀의 교육서’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기 위해 말씀을 배우고, 외우고, 가르치고, 살아내는 과정을 공동체 전반에 걸쳐 제도화했다. 특히 유대 공동체는 가정, 회당, 절기, 암송 등을 교육 시스템으로 조직화하며 성경 자체를 삶의 방식으로 만들었다.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는 이 교육 체계는 단순히 고대의 종교 교육이 아닌, 정체성 보존의 전략이자 공동체 유지를 위한 신앙적 지혜였다.

율법은 기억되고 가르쳐야 할 하나님의 명령이었다고대 이스라엘에서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을 유지하기 위한 신앙 실천이었다. 신명기 6장은 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이든지 길을 갈 때이든지, 누웠을 때이든지 일어날 때이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라는 명령은 교육을 가정과 일상의 핵심으로 규정한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교육은 부모의 책임이자 민족의 생존 전략이었다. 율법은 신전의 사제나 학문 기관에서만 다루는 전문 지식이 아니라, 모든 백성이 외우고 기억해야 할 삶의 지침이었다.

가정에서 시작된 교육 – 아버지는 율법 교사였다유대인의 교육은 가장 먼저 가정에서 시작됐다. 특히 아버지는 자녀의 신앙 교육을 책임지는 ‘1차 교사’였으며, 이는 단순한 역할이 아니라 율법의 명령이었다. 출애굽 이후 광야 생활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자녀에게 직접 말씀을 가르치고 그들의 삶에 새기라고 명령하셨다. 고대 유대인 가정에는 메주자(mezuzah)라 불리는 말씀 상자가 출입문에 부착되었고, 부모는 자녀에게 매일같이 말씀을 낭독하고 해석해주는 일을 일상의 한 부분으로 여겼다. 이는 단지 종교적 훈련이 아니라, 자녀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기 위한 공동체의 정체성 교육이었다.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가정 교육을 통해 신앙을 계승했다. 사사기의 ‘여호수아 세대 후의 세대가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는 구절은 신앙 교육이 중단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경고다. 그래서 고대 이스라엘의 부모들은 매일같이 토라를 읽고, 자녀가 율법을 외우게 했으며, 이야기를 들려주며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되새겼다.

회당과 율법학교의 형성 – 지역 사회 중심의 공교육으로 발전바벨론 포로기를 거치면서 유대 사회는 회당 중심의 신앙 공동체로 재편되었고, 이는 곧 교육 제도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었다. 성전 중심의 제의 생활이 중단되자, 회당은 기도, 율법 교육, 공동체 교제의 중심지로 기능하게 되었고, 그 안에서 어린아이들에게 성경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기 위한 구조가 형성된다. 이 구조가 바로 고대 유대인의 ‘공교육 시스템’이라 불릴 만한 벳 세페르(Bet Sefer), 벳 탈무드(Bet Talmud), 벳 미드라쉬(Bet Midrash)였다.

벳 세페르는 5세부터 10세까지의 남자아이들이 토라를 암송하며 교육을 받는 장소였다. 교육은 철저히 성경 중심이며, 히브리어 문자 교육, 율법 조항의 이해, 암송이 교육의 핵심을 이뤘다. 특히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전체 구조와 이야기를 모두 암기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벳 탈무드에서는 미쉬나(구전 율법의 집대성)와 탈무드(해설서)를 중심으로 율법 해석 능력을 키웠으며, 이 시기부터는 학생 간의 토론과 논쟁식 교육이 이루어졌다. 마지막 단계인 벳 미드라쉬는 주로 성인 남성과 예비 랍비들이 성경을 깊이 연구하는 과정이었고, 이는 오늘날 신학대학에 해당하는 고등 교육 기관으로 볼 수 있다.

이 구조는 고대 이스라엘 사회가 왜 멸망 이후에도 문화적·정체적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준다. 나라는 사라졌지만, 말씀을 중심으로 한 교육과 회당 시스템은 민족의 정체성을 지탱했다. 특히 탈무드를 기반으로 한 철저한 문해 교육은 디아스포라 시대 유대인이 세계 각지에서 경제, 문화, 지적 영역에서 영향력을 끼치는 기반이 되었다.

절기와 전통, 그리고 의례는 교육 그 자체였다고대 이스라엘에서 절기와 제의는 단지 종교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삶 속에서 말씀을 가르치기 위한 교육의 장’이었다. 유월절, 초막절, 오순절은 모두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동시에, 자녀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몸으로 기억하게 만드는 교육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유월절 저녁에 자녀가 “아버지, 오늘 밤은 왜 다른 날과 다릅니까?”라고 묻는 것은 단지 예식의 순서가 아니라, 교육적 장치를 통한 세대 간 신앙 계승의 시작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단지 문자를 읽고 외우는 교육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삶으로 말씀을 ‘공연’하는 집단적 기억의 훈련이었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의 ‘교육’이 성경을 통해 삶을 재현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성경은 삶을 명확하게 구획하는 기준이며, 삶의 사건 하나하나를 말씀으로 해석하고 방향을 설정하게 해주는 틀이었다.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는 성경 교육이 일상 전반에 깊숙이 스며든 구조였다.

율법은 단지 종교적 문서가 아니라, 민족의 정체성과 생존을 결정짓는 기준이었으며, 교육은 이 율법을 자녀에게 계승하기 위한 가장 본질적인 공동체의 사명이었다. 예수님은 이러한 교육 환경 속에서 자라나셨고, 당시 회당과 율법학교의 제도와 문화를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하신 분이었다. 그러나 그는 단지 기존의 교육 체계를 따르기보다, 그 본질을 회복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말씀을 해석하고 전달하셨다. 예수님의 가르침 방식은 고대 이스라엘 교육의 연속이자, 동시에 그 한계를 넘어서는 근본적 전환이었다.

예수님의 말씀 교육 – 랍비에서 선생으로율법학자들과 랍비들은 철저한 토라 중심 교육을 통해 권위를 세우는 존재였지만, 예수님은 그 권위를 기존의 제도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와의 친밀한 관계와 권능에서 끌어왔다. 그는 공식 교육기관의 졸업자가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깊이 있는 말씀 해석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요 7:15)라는 질문은, 당시 유대 사회의 교육 기준과 예수님의 가르침 사이의 괴리를 잘 보여준다.

예수님은 회당에서도 가르치셨지만, 주로 들판, 산, 배 위, 시골 마을 등 일상 현장에서 말씀을 전하셨다. 이는 고대 이스라엘 교육의 핵심이었던 ‘삶 속에서의 교육’을 회복시키는 방식이었다. 부모가 자녀에게 걸으며 가르치고, 식사 자리에서 말씀을 나누는 전통이 예수님의 사역 방식과 놀라울 정도로 맞닿아 있다. 그분은 율법을 암송하게 하지 않고 비유로 풀어내셨고, 설명보다 ‘함께 살아내는 방식’으로 진리를 제시하셨다.

회당 교육과 그 한계 – 율법의 기억은 있었지만 삶의 변화는 없었다당시 회당에서는 여전히 아이들에게 토라를 가르치고, 말씀을 외우게 하며, 규범을 지키게 하는 교육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말씀은 기억했지만 사랑은 사라지고, 형식은 지켰지만 본질은 잃은 지도자들이 많았다. 예수님은 이 점을 반복적으로 비판하셨다.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마 15:8). 교육이 기억에 머무르고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할 때, 그것은 율법의 껍데기만을 남긴 채 생명력 없는 지식으로 전락한다.

예수님은 율법의 핵심을 ‘사랑’으로 요약하셨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하셨고(마 22:37-40), 이 교육 원리를 삶 속에서 반복해 보여주셨다. 사마리아인, 간음한 여인, 병든 자, 세리에게 다가가신 것은 단지 인도적인 행동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친다는 것”이 곧 “말씀대로 살아낸다는 것”임을 몸소 보이신 사건이었다.

초기 교회의 교육 – 공동체 전체가 교육의 현장이 되다사도행전에서 보이는 초기 교회 공동체는 회당의 교육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더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방식으로 변화했다. 초대 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기에 힘썼으며, 말씀과 기도, 떡을 떼는 일과 공동생활 속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삶으로 확장시켰다(행 2:42). 교육은 설교나 강의에 국한되지 않고, 나눔, 구제, 섬김, 순교와 같은 전 삶의 영역으로 확장되었고, 이는 고대 이스라엘의 ‘말씀을 실천으로 연결하는 교육’의 정통성을 이어간 셈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자녀에게 말씀을 물려주는 가정 중심 교육을 여전히 중시했고, 동시에 믿음의 공동체가 함께 다음 세대를 세우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교부 시대에 이르러 오리게네스, 어거스틴, 요한 크리소스톰 같은 인물들은 말씀을 체계적으로 해석하고 교회 교육의 방향을 정립했으며, 이는 중세와 종교개혁기의 교리문답 교육, 근대의 주일학교 운동, 현대의 기독교 학교와 신학교 체계까지 이어졌다.

오늘날 기독교 교육에 주는 통찰 – 말씀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게 하라현대 교회 교육은 너무 자주 ‘정보 중심’으로 치우친다. 성경 공부는 많지만, 실제 삶에서 말씀을 실천하는 훈련은 부족하다. 고대 이스라엘의 교육은 늘 행동을 동반했고, 예수님 역시 ‘들으라’와 ‘행하라’를 분리하지 않으셨다. 자녀에게 성경을 외우게 하는 것보다, 부모가 삶 속에서 말씀을 어떻게 살아내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더 강력한 교육이다.

말씀은 책 속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교회 안의 강의실뿐 아니라, 식탁 위에서, 자녀와의 대화 속에서, 직장에서의 결단 속에서, 고난 속에서, 그리고 절기와 예배 안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이것이 고대 이스라엘이 보여준 ‘세대를 위한 말씀 교육’이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영적 훈련의 방식이다.

하나님은 단지 말씀을 기록하게 하신 분이 아니다. 그 말씀을 ‘전달하라’ 하셨고, ‘기억하라’ 하셨으며, ‘살아내라’ 명령하셨다. 오늘날의 교육이 이 본질을 회복할 때, 말씀은 다시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언어가 될 것이다.

매일말씀저널 | 성경지식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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