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그 관계는 언제나 쉽지 않다. 신앙이 있다고 해서 모든 인간관계가 원만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믿음이 깊어질수록, ‘사랑하라’는 명령이 더 무겁게 다가오고, 용서와 인내의 요구는 더 빈번하게 반복된다. 일터에서, 교회에서, 가정에서 크리스천들은 관계의 갈등과 피로 속에서 때로 상처를 입고, 때로는 좌절한다.
문제는 사랑하려는 마음은 있지만, 그 방법을 모른다는 데 있다. 본 글은 ‘상처받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신앙적 관계 기술을 7가지로 정리했다.
이 글은 그리스도인이 관계 속에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견고히 서기 위한 실제적인 지침이 될 것이다.
1. 사랑은 거리 두기와 충돌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사랑과 거리 두기를 반대 개념으로 여긴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사람과 화평하되’ 동시에 ‘악한 자를 멀리하라’고 말한다(롬 12:18, 시 1:1). 사랑은 누군가를 통제하거나 계속 가까이 두는 것이 아니다.
사랑이 진짜라면, 건강한 거리는 오히려 관계를 지킨다. 상대방의 반복되는 실수나 무례함 속에서 자신을 무너뜨리는 것은 신앙이 아니다. 용서와 거리두기는 병행 가능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지만, 죄와는 거리두신다.
그러므로 관계 속에서 나의 경계를 설정하고 지키는 것은 사랑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지속하기 위한 선택일 수 있다.
2. 상대의 말보다 의도를 분별하라
갈등은 종종 말의 표현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크리스천은 말의 ‘의도’를 분별하는 사람이다. 자문 20장 5절은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 같으나, 명철한 자는 그것을 길어낸다”고 기록한다.
누군가의 날카로운 말이 진짜 의도인지, 혹은 감정의 결과인지를 분별할 수 있다면 불필요한 상처를 줄일 수 있다. 말은 때로 미성숙의 표현이지, 악의는 아닐 수 있다.
신앙인은 상대를 정죄하기보다, 그의 내면을 해석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말 한마디에 반응하기보다는 그 말 뒤의 상황과 마음을 읽는 훈련이 필요하다.
3. 모든 충돌에 응답하지 않아도 된다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반응하지 않으셨다. 헤롯의 질문에도, 빌라도 앞에서도 침묵하셨고, 사람들의 도전적인 말에 가끔은 대답하지 않으셨다.
말씀이신 그분도 때로 침묵을 선택하셨다면, 우리도 모든 공격과 오해에 반드시 대응할 필요는 없다. 반응하지 않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선택이다. 누군가의 말이나 태도가 불편할 때, 반드시 해명하거나 반박해야 한다는 압박을 내려놓아야 한다.
침묵은 관계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 관계를 지키는 방법이다. “어리석은 자와 다투지 말라 그와 같아질까 두렵다”(잠 26:4)는 말씀처럼, 모든 논쟁은 지혜롭지 않다.
4. 나의 감정을 하나님께 먼저 말하라
관계의 어려움은 감정을 동반한다. 분노, 슬픔, 억울함, 수치감 등 다양한 감정이 복합적으로 몰려올 때, 우리는 그것을 상대에게 직접 표현하거나 속으로 억누르곤 한다.
그러나 성경은 다윗의 시편을 통해, 감정을 하나님께 드러내는 신앙을 보여준다. “내 속에 괴로움이 많사오니 주의 위로가 내 영혼을 즐겁게 하나이다”(시 94:19). 하나님께 감정을 토로할 수 있다면, 사람에게 분노하거나 실망하기 전에 중심을 다잡을 수 있다.
감정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죄로 이어진다. 신앙인은 감정을 억제하거나 터뜨리는 대신, 하나님께 솔직히 올려드리는 훈련이 필요하다.
5. 사과받지 않아도 용서할 수 있다
용서는 감정의 정리라기보다 신앙의 결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용서를 ‘상대의 사과’에 조건지으려 한다. 그러나 성경은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누구든지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막 11:25)고 말한다.
용서는 상대가 아니라 나를 위한 선택이다. 사과를 받지 못해도, 회복되지 않아도, 나는 내 마음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반복된 상처 속에서 마음이 지쳐 있을 때, 우리는 용서를 외면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용서는 상처를 덮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하나님께 맡기겠다는 고백이다. 상처가 남아 있는 채로도 용서는 가능하며, 그것이 신앙인의 용기다.
6. 반복된 관계의 패턴을 점검하라
자신이 계속 비슷한 관계에서 상처받는다면, 그 안에는 반복된 패턴이 있을 수 있다. 지나친 책임감, 사람을 바꾸려는 기대, 나를 희생해서 관계를 유지하려는 습관은 결국 관계 피로를 낳는다.
크리스천은 자기 부인이 중요한 덕목이지만, 그것이 ‘자기 파괴’가 되어선 안 된다. 신앙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지만, 그 변화는 내가 아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관계가 반복적으로 나를 상하게 만든다면, 그 구조를 객관적으로 점검하고,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으로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내면이 지속적으로 파괴되길 원하지 않으신다.
7. 내가 모든 관계의 답일 필요는 없다
어떤 사람은 갈등을 중재하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애쓴다. 그러나 우리는 구세주가 아니다. 하나님만이 모든 사람을 회복시키실 수 있다.
관계 안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몫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이상은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지나친 책임감은 결국 자책으로 이어지고, 관계에 대한 통제 욕구는 신앙의 평안을 빼앗는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는 말씀은 관계에서도 유효하다.
사랑하되 집착하지 않고, 책임지되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크리스천의 균형 잡힌 태도다. 모든 관계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착각하는 순간, 우리는 신앙이 아닌 자아로 사람을 대하게 된다.
관계는 훈련이며, 믿음의 자리다
인간관계는 때로 가장 큰 축복이고, 때로 가장 큰 시험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공동체 안에 부르셨고, 관계 속에서 연단하시며 자라게 하신다.
사랑하라는 명령은 감정이 아니라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반복될수록 믿음의 근육이 된다. 오늘도 어떤 사람으로 인해 마음이 무겁다면, 그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에 귀 기울이자.
하나님은 관계를 통해 당신을 빚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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