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스마트폰은 누구의 시간인가 – 기독교인이 디지털 중독 시대를 살아가는 법


 

디지털 시대의 일상, ‘스마트폰’이라는 신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기도 전에 스마트폰을 든다. 자명종을 끄기 위해, 혹은 하룻밤 사이에 쌓인 알림을 확인하기 위해. 그 짧은 움직임이 오늘 하루의 리듬을 결정한다. 출근길에는 뉴스를 보고, 점심시간엔 SNS를 살피며, 퇴근 후에는 영상 콘텐츠로 머리를 비운다. 기독교인이라 해도 예외는 아니다. 성경 앱을 통해 말씀을 읽는다 하더라도, 그 앞뒤로는 틱톡 영상과 유튜브 쇼츠가 자리하고 있다.

이 시대에 스마트폰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존재의 확장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시간, 집중력, 영혼의 여백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교회에서 성경책 대신 스마트폰을 펴는 풍경은 익숙해졌고, 예배 중에도 알림을 확인하고 메시지를 보내는 일은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디지털 기기는 이제 ‘선택적 편의’가 아니라 ‘불가피한 의존’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스마트폰은 편리함과 연결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시간’을 집어삼킨다. 크리스천에게 있어 시간은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겨진 사명적 선물이다. 그런데 그 시간이 어디로 흐르고 있는가? 우리는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스마트폰이 우리를 관리하고 있는 건 아닐까.

중독이 된 일상, 조용히 사라지는 묵상의 시간

기도와 묵상의 시간은 믿는 이들의 영적 호흡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지배하는 시대에는 이 호흡이 점점 얕아지고 있다. 하루의 시작을 말씀보다 알림으로 열고, 하루의 마무리를 기도보다 영상으로 닫는다. 스마트폰은 쉼 없는 자극으로 마음을 붙잡고, 하나님께 향할 집중력을 분산시킨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구조 자체를 흔드는 흐름이라는 점이다. 예수님은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침대 위에서 손 안의 기기를 통해 하루를 흘려보낸다. 주님과의 조용한 만남 대신, 콘텐츠와의 끝없는 교류 속에 영혼은 점점 피로해진다.

성경 앱도, 말씀 묵상 푸시 알림도, 처음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깊은 만남’이 아닌 ‘간편한 소비’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조용히 머무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클릭 한 번, 스크롤 몇 번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묵상의 시간을 회복하지 않는 한, 신앙은 피상적인 동의에 머물 수밖에 없다.

시간의 주권을 되찾는 싸움, 그것은 신앙의 실천이다

에베소서 5장 16절은 이렇게 권면한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단순한 시간 절약이 아니라, 삶의 우선순위를 바로 세우라는 말씀이다. 우리가 스마트폰에 하루 4~5시간을 쓰고 있다면, 그 시간 중 일부는 하나님께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기도와 묵상, 말씀 읽기라는 기본이, 디지털 시대 크리스천의 유일한 저항일 수 있다.

단 15분이라도,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는 훈련.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첫 걸음이다. 여백 없는 스케줄에 말씀이 들어올 틈을 만들어주는 것, 그 짧은 시간 속에 하나님은 여전히 말씀하시고, 여전히 만나주시며, 여전히 변화시키신다.

디지털 금식은 선택이 아니라 필요다. 우리는 먹는 것보다, 보는 것에 더 중독된 시대를 살고 있다. 단식을 통해 위장을 비우듯, 디지털 금식을 통해 감각을 비워야 한다. 그래야 다시 영혼이 깨어난다.

스마트폰을 도구로 회복시키기 위한 실제적 실천

많은 기독교인들이 디지털의 유혹을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신앙이 약해서라기보다 ‘구체적인 방법’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사용을 무조건 끊을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의도적으로 신앙을 회복할 수 있는 실천을 일상에 심어갈 수는 있다.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효과적인 실천은 세 가지다.

첫째, 스마트폰 금식 시간을 정하라. 하루 중 단 1시간이라도 의도적으로 휴대폰을 멀리 두고, 오직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는 시간으로 삼아보자. 저녁 9시 이후, 혹은 출근 전 30분이 될 수 있다. 이 시간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거룩한 약속’이다. 둘째, 성경은 반드시 종이책으로도 읽자. 디지털 화면 속 말씀은 자주 알림과 방해를 받는다. 손으로 넘기며 읽는 성경은 깊이와 집중, 그리고 하나님 앞에 앉아 있는 마음가짐을 회복시킨다. 셋째, SNS 사용 전 기도하라. 포스팅이나 댓글을 달기 전 ‘이 글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부끄럽지 않은가’를 묻는 기도는, 신앙을 일상의 온라인 공간으로 확장시키는 출발점이 된다.

스마트폰은 기술이지 신이 아니다

스마트폰은 빠르고 똑똑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만든 도구일 뿐이다. 그 도구가 인간을 지배하고, 시간을 삼키고, 영혼을 흐리게 만든다면, 그것은 기술의 축복이 아니라 우상이 된다. 성경은 반복해서 말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신명기 6:5) 그런데 오늘 우리의 마음과 뜻과 힘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손바닥 위의 화면 속으로 흘러가고 있지는 않은가.

기독교인은 이 시대에 단순한 ‘기술 사용자’가 아니라 ‘분별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외적인 도구보다 내적인 태도를 중요하게 여기셨다. 누가복음 10장에서 마르다는 분주한 봉사를 했지만, 예수님은 그보다 조용히 주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던 마리아를 칭찬하셨다. 오늘날 스마트폰은 우리를 마르다처럼 분주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마리아처럼 말씀 앞에 멈춰 서는 것이다.

하루의 5분이든, 15분이든,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그 짧은 결단이 영혼의 방향을 바꾼다. 예배 시간에는 완전히 알림을 끄고, 큐티 시간에는 비행기 모드를 켜며, 산책 중에도 이어폰 대신 하나님과의 대화를 선택해 보자. 믿음은 거창한 결심보다, 작고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살아 움직인다.

예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라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분이셨지만, 언제나 본질만을 선택하셨다. 말씀을 선포하시되 한 사람을 향해 말씀하셨고, 무리를 만나시되 한 영혼을 귀히 여기셨다. 그분의 시선은 늘 핵심을 꿰뚫었다. 오늘 우리가 스마트폰을 통해 보고 듣고 있는 세상은, 때로 거짓되고 불필요한 정보로 가득 차 있다. 그 혼란 속에서 예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다시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우리가 결국 무엇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지를 묻자. 디지털을 이기기 위해 아날로그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디지털 세계 한복판에서,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증거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손안의 화면을 켜기 전, 먼저 마음의 문을 여는 것.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의 첫 응답이다.

매일말씀저널 | 오늘의 세상, 말씀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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