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연결의 시대, 왜 우리는 더 외로워졌는가 (성경으로 보는 세상)

 

21세기는 연결의 시대다. 우리는 손안의 기기로 누구와도 실시간으로 대화할 수 있고, 단 몇 초 만에 지구 반대편의 소식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 소셜미디어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이어주고, 알림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너는 혼자가 아니다’라고 말해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토록 연결된 시대에, 사람들은 더욱 깊은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누군가의 삶을 매일 들여다보지만 진짜 대화는 사라졌고, 좋아요는 많아졌지만 진심은 줄어들었다. 연결은 풍부해졌지만 관계는 가벼워졌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리고 성경은 이 시대를 어떻게 바라볼까?

가짜 관계가 넘치는 시대

현대 사회에서 인간관계는 점점 더 빠르고 얕아지고 있다. 메시지는 짧고, 반응은 이모티콘으로 대체된다. 사람들은 수많은 대화 속에서도 마음을 나누지 않고, 관계는 점점 더 소비적인 방식으로 흘러간다. 이른바 ‘관계 피로’라는 말까지 생겼다. 친밀한 교제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지치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는 관계가 오히려 선호된다.

이것은 단지 문화적 변화가 아니다. 인간 본성에 관한 깊은 왜곡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처음부터 ‘관계 속 존재’로 지으셨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을 좋지 않게 보셨고, 그에게 하와를 주셨다.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은 온전해지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나 죄는 관계를 깨뜨렸다. 첫 죄 이후, 아담은 하와를 비난했고, 가인은 아벨을 죽였다. 죄는 분리를 낳았고, 불신을 만들었으며, 사랑을 감추었다. 이 흐름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기술은 점점 정교해지지만, 인간의 고독은 깊어지고 있다. ‘보이는 연결’이 ‘실제의 친밀함’을 보장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수는 관계를 복원하셨다

복음은 단지 죄의 용서만이 아니라, 관계의 회복이다.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다시 잇고, 원수된 자들을 형제로 부르셨다. “너희는 이제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며 하나님의 권속이라”(엡 2:19)는 말씀처럼, 복음은 고립된 자를 공동체로 초대하신다.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철저히 사람과 함께하셨다. 병든 자를 가까이하셨고, 세리와 죄인들과 식사를 나누셨다. 말씀을 가르치기 전에 함께 걸으셨고,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그들의 눈을 바라보셨다. 예수의 복음은 논리가 아니라 관계였고, 선언이 아니라 품어냄이었다.

오늘날 교회는 이러한 복음의 본질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프로그램보다 교제가 먼저고, 예배의 웅장함보다 한 영혼을 향한 관심이 우선되어야 한다. 성도는 온라인의 팔로워 수보다 옆 사람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관계 없는 복음은 공허하다. 복음은 사랑의 회복이며, 그 사랑은 반드시 관계 속에서 증명된다.

말씀은 우리를 다시 연결하게 한다

디지털 시대의 신자는 이전과 다른 싸움을 치른다. 끊임없는 정보와 자극 속에서, 고요한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 그러나 말씀은 여전히 우리를 부르신다.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 46:10)라는 이 구절은, 빠름에 익숙한 우리에게 주어진 쉼표이자, 하나님과의 ‘연결 회복’을 위한 초대장이다.

성경은 관계의 책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이야기, 인간과 인간 사이의 화해,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섬김과 사랑, 이 모든 것이 ‘연결’을 주제로 한다.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단지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관계의 원형을 회복하는 일이다.

세상이 점점 더 외로워질수록, 복음은 더 분명하게 빛난다. SNS로는 치유되지 않는 외로움, 알고리즘으로는 만져지지 않는 고통이 있을 때, 말씀은 진짜 관계로 초대한다.

하나님과 다시 연결되고, 사람과 다시 마음을 열게 하고,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게 한다.

 

작성자: 이시온 | 매일말씀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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