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단일한 책이 아니다. 66권으로 구성된 성경은 수천 년에 걸쳐 다양한 저자들에 의해 기록되었고, 오랜 시간의 논의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정경’(正經, Canon)으로 확립되었다. 정경이란 말 그대로 “측량 기준, 법적 표준”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카논(canon)’에서 유래한 단어로, 신앙과 교리에 있어 ‘권위 있는 성경 목록’을 뜻한다. 하지만 이 정경이 언제부터, 어떤 기준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결정되었는지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명확히 알지 못한다. 이 글에서는 정경화라는 복잡하고도 치열했던 역사를 따라가며, ‘왜 지금의 성경이 선택되었는가?’라는 질문에 천천히 다가가 보려 한다.
구약 정경의 형성 – 모세오경에서 시작된 기록의 전통구약 성경의 기초는 모세오경(토라)이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과 이스라엘 민족의 기원을 기록한 책들로, 유대교의 신앙과 정체성의 뿌리를 형성한다. 이후 사무엘, 열왕기, 이사야, 예레미야, 시편, 잠언 등 역사서, 예언서, 시가서들이 점차 공동체 내에서 읽히고, 교육되고, 예배에 사용되면서 권위를 갖게 되었다.
BC 5세기경 에스라와 느헤미야 시대에는 ‘율법 낭독회’가 성행했고, 이 시기를 기점으로 ‘공식적 성경 목록’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구약의 정경이 정확히 몇 권이며 언제 확정되었는지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많다. 다만 대체로 BC 2세기~AD 1세기경 유대 라삐들이 24권으로 정리한 히브리 성경(타나크)이 오늘날 구약 정경의 뼈대가 되었으며, 이 24권이 기독교 전통에서는 39권으로 나뉘어 정경화되었다고 본다.
70인역과 외경 – 경계의 모호함과 정경 논쟁의 불씨70인역(Septuagint)은 히브리어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한 최초의 공식 성경으로, 이 번역본에는 히브리 성경에 포함되지 않은 여러 문서가 함께 들어 있었다. 토비트, 유딧, 마카베오기, 지혜서, 시락(집회서) 등 7~14권 정도의 문서들은 후대에 ‘외경’(Apocrypha)이라 불리며 정경 논쟁의 중심에 선다. 유대인 공동체 일부는 이 문서들을 경건한 읽을거리로는 인정했지만,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으로 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초대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70인역을 자연스럽게 사용했고, 그 안에 포함된 외경도 예배와 교육에 활용되었다. 이는 훗날 교부 시대까지 이어졌고, 특히 어거스틴은 외경을 ‘제2정경’으로 부분 인정했다. 반면 예로니무스(불가타 성경 번역자)는 히브리 본문에 충실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외경을 제외했다. 이 양쪽의 입장이 이후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의 정경 구분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신약 정경의 형성 – 사도적 권위와 교회 공동체의 검증신약 정경은 구약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치열한 논의 끝에 정리되었다. 예수님의 승천 이후 1세기 말까지 복음서와 서신서들이 각 지역 교회에 흩어져 유통되었으며, 이들 문서들은 ‘사도적 권위’와 ‘정통 교리’ 여부에 따라 평가받았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복음서는 초기에 널리 인정되었고, 바울서신 역시 그의 교회 개척과 영향력 덕분에 빠르게 권위를 확보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많았다. 바나바서, 도마복음, 베드로묵시록, 헤르마스의 목자 등 ‘준정경’으로 읽히던 문서들이 많았고, 이단적 색채가 있는 가짜 복음서도 다수 존재했다. 이 시기에 교회 공동체는 문서 하나하나에 대해 끊임없는 토론과 검증을 거치며, 어느 문서가 ‘공통의 진리’이며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인지 식별하려 했다. 이러한 과정은 수십 년에서 수백 년에 걸쳐 이어졌으며, 결국 4세기 중엽, 아타나시우스의 39서간(AD 367)을 통해 현재의 신약 27권 목록이 명문화된다.
– 외경, 가경, 그리고 정경의 의미는 지금도 유효한가
성경의 정경화는 단순한 ‘책의 목록 확정’이 아니다. 그것은 교회 공동체가 수세기 동안 하나님의 계시와 사람의 기록 사이에서 신앙의 경계선을 세운 작업이었다. 이 과정은 단번에 끝난 사건이 아니라, 시대와 지역, 신학과 정치, 성령의 인도와 인간의 판단이 교차한 복합적인 역사다. 4세기경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현재 우리가 아는 66권 또는 그 이상을 정경으로 확정했지만, 그 결정이 전 세계적으로 동일하게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다. 각 교파마다 ‘정경’의 수가 다르고, 외경과 가경을 어떻게 다루는지도 서로 상이하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정보 습득을 넘어, 오늘날 ‘성경은 어디까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신학적 성찰을 요구한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정경 차이 – 외경을 둘러싼 오랜 논쟁가톨릭 교회는 트렌트 공의회(1546년)에서 7권의 외경을 ‘제2정경’으로 공식 인정했다. 이 책들은 토비트, 유딧, 지혜서, 집회서(시락), 바룩서, 마카베오 상·하로, 구약의 흐름을 보완하고 신앙적 교훈을 담고 있어 예배와 교육에 활용되었다. 그러나 루터를 중심으로 한 개신교 전통은 ‘히브리어 본문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외경을 정경에서 제외했다. 루터는 외경을 ‘성경과 다른 두 번째 권위의 책’으로 따로 분류했으며, 개역성경 초판까지는 외경이 부록 형태로 실려 있었다.
오늘날 개신교는 히브리어 기준의 39권 구약과 헬라어 신약 27권만을 정경으로 삼는다. 반면 가톨릭은 총 73권(구약 46권)을, 동방정교회는 더 많은 책을 정경으로 포함한다. 이 차이는 단지 분량의 문제가 아니라, ‘권위’와 ‘계시’에 대한 인식의 차이이며, 특정 본문에 대한 해석과 교리 형성에도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연옥, 성인 중보, 세례 후 회개 등 가톨릭의 교리는 외경 일부 내용과도 연결되어 있어, 정경의 경계는 곧 교리의 경계를 형성한다.
동방 정교회와 다른 전통 – 더 넓은 정경, 더 유연한 접근동방정교회는 에티오피아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아르메니아 교회 등 각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정경 전통을 가지고 있다. 특히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에녹서’, ‘희년서’, ‘셈의 책’ 등 수많은 외경과 가경을 정경으로 받아들이며, 그 수가 81권을 넘는다. 이들은 정경의 권위를 ‘교회 전통의 흐름’ 안에서 이해하며, 어떤 책이 오랫동안 예배에서 읽혀지고 삶에 영향을 미쳐왔다면, 그것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보는 보다 유기적인 입장을 취한다.
이와 같은 다양성은 우리로 하여금 성경 정경화의 역사 자체가 ‘폐쇄된 목록’이 아니라, ‘계속된 분별과 성찰의 여정’이었음을 일깨워준다. 정경은 시대마다 다시 묻고 또 확인해야 하는 주제이며, 그것이 오늘날에도 유효한 질문으로 남아 있는 이유다.
정경의 권위는 어디서 오는가 – 하나님이 아닌 교회의 결정인가?성경이 왜 이 66권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방식은 교단과 학자마다 다르지만, 정통 복음주의 전통은 이렇게 정리한다: “교회가 성경을 만든 것이 아니라, 성경이 교회 안에서 스스로 그 권위를 드러냈다.” 곧 교회는 단지 하나님이 감동하신 말씀들을 식별했을 뿐, 그 권위를 부여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는 ‘정경 인식론’으로 불리며, 성경의 내재된 진리와 영감이 공동체를 통해 확인되었다는 신학적 관점을 담고 있다.
정경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경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는 늘 갱신되어야 한다. 정경은 그저 법적인 목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였는가’를 보여주는 믿음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정경 논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우리는 지금도 성경의 권위와 해석을 놓고 갈등하고 있다. 일부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의 ‘절대 권위’를 부정하고, 반대로 문자주의는 성경의 문맥과 문화적 배경을 무시한다. 정경 논의는 이런 흐름 속에서 다시 중요해진다. 우리가 무엇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느냐는 질문은 곧 ‘우리는 누구이며, 누구의 다스림 아래 살아가는가’를 묻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성경에 포함되지 않은 외경과 가경을 읽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고대 교회가 그 책들에서 무엇을 배웠고, 왜 그것들을 정경에서 제외했는지를 공부하는 것은 신앙의 성숙을 위한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다만 그것들을 ‘동일한 권위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경이란 단어는 지금도 교회에 유효하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시대를 뛰어넘어, 인류에게 말씀하시고, 보존하시고, 공동체를 통해 확인하게 하신 ‘신적 소통의 표준’이기 때문이다. 그 정경이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말씀으로 소통하시며, 우리는 그 말씀 안에 살아 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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