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그 자체로 한 권의 번역사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히브리어, 아람어, 헬라어라는 세 언어로 처음 말씀하신 이후, 인류는 이 거룩한 기록을 자신들의 언어로 받아들이기 위해 수많은 시도와 고뇌를 거쳐왔다. 각 언어로 옮겨지는 과정은 단지 문자 전달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각 시대와 문화 속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신학적 해석의 사건’이었다. 특히 구약성경이 헬라어로 번역된 70인역(Septuagint)을 시작으로, 성경 번역은 정치적 논쟁, 교리적 충돌, 순교와 박해, 그리고 종교개혁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수백 번 새롭게 태어났다. 이 글은 그 거대한 여정의 전반기, 곧 70인역부터 중세 라틴어 성경까지의 역사를 따라가며, 성경 번역이 단순한 ‘도구’가 아닌 하나님의 섭리라는 사실을 조명하고자 한다.
70인역 – 최초의 공식 번역 성경기원전 3세기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정착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를 모르는 2세대 자녀들을 위해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당시 헬라어는 헬레니즘 세계의 공용어로, 지중해 전역에서 가장 널리 통용되던 언어였다. 이를 번역한 성경이 바로 ‘70인역’(Septuagint)이다. 전승에 따르면 72명의 학자들이 각자 따로 번역했는데, 모두 똑같은 결과를 내놓았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붙어 있으나, 실제로는 수십 년간 여러 지역의 학자들이 작업한 결과물로 추정된다.
70인역은 단순한 언어 전환이 아니라, 고대 유대인들이 신앙의 정체성을 헬라 문명 안에서 어떻게 유지하고자 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다. 흥미로운 점은 신약성경의 저자들조차도 구약의 인용을 할 때 히브리어 원전이 아니라 70인역을 주로 인용했다는 사실이다. 마태복음, 사도행전, 바울 서신 등은 모두 70인역의 표현과 문장을 직접 사용했다. 이는 이미 예수님 당시, 헬라어 성경이 유대 공동체 내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라틴어 성경의 등장 – 서구 기독교의 표준어가 되다헬라어권이 점차 쇠퇴하고, 로마 제국의 공용어가 라틴어로 바뀌면서 성경 역시 새로운 언어로의 번역이 필요해졌다. 초기에는 다양한 개인 번역본들이 난립했는데, 이를 하나의 표준으로 통합한 것이 4세기 말, 히에로니무스(Jerome)의 ‘불가타 성경(Vulgata)’이다. 불가타는 히브리어 구약과 헬라어 신약을 모두 참조하여 라틴어로 번역된 최초의 정본 성경이며, 이후 천년 가까이 서구 기독교 세계에서 공식 성경으로 사용되었다.
히에로니무스는 단순한 번역가가 아니었다. 그는 성경의 원어를 깊이 연구하고, 당시 라틴어의 문학성과 정확성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단어를 선택했다. 그의 번역에서 유명한 논쟁 중 하나는 이사야서 7:14의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는 구절에서 히브리어 ‘알마’를 ‘virgo(처녀)’로 옮겼다는 점이다. 이는 메시아 탄생의 예언에 대한 교리적 근거로 받아들여졌으며, 이후 기독교 신학 전통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불가타 성경은 이후 수많은 필사본과 찬송가, 교리서의 기초가 되었고, 중세 유럽 전역에서 ‘성경=라틴어’라는 등식이 형성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표준화는 동시에 ‘성경은 성직자만이 읽을 수 있다’는 계급적 장벽을 만들었고, 평신도들은 성경을 접근할 수 없게 되었다. 라틴어 성경은 진리를 보존하는 역할도 했지만, 교회의 권위를 고착화시키는 수단으로도 작용하게 된다.
중세 교회의 번역 억제 정책 – 성경은 금서가 되다중세에 들어서면서, 교회는 성경 번역을 엄격히 통제하기 시작했다. 라틴어 불가타 성경은 성직자와 수도자만이 접근할 수 있었고, 평신도가 이를 읽거나 번역하려는 시도는 ‘이단’으로 간주되었다. 13세기 이후, 여러 지역에서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으나, 이는 곧바로 탄압과 박해로 이어졌다. 교회는 “성경은 오용될 수 있는 위험한 도구”라는 명분으로 번역을 억제했고, 실제로 수많은 번역가들이 화형당하거나 추방당했다.
이 시기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다. 그는 14세기 영국에서 성경을 영어로 번역했으며, 라틴어 성경을 기반으로 일반인들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그의 성경은 필사본으로 유통되었으며, 이는 로마 교회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받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위클리프 사후에도 교황은 그의 유해를 파내 불태웠고, 그의 성경도 금서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그의 번역은 훗날 루터와 틴데일 등 종교개혁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성경의 대중화에 불씨를 제공했다.
성경 번역은 왜 그렇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는가? 그것은 성경이 곧 ‘말씀의 권위’이자 ‘교회의 권위’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번역은 말씀의 독점 구조를 무너뜨리는 혁명이었고, 따라서 통제받아야 할 위험한 행위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성경의 본질은 소수에 의한 독점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열린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믿음은 결국 종교개혁과 더불어 ‘모든 사람이 자신의 언어로 말씀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확신으로 이어진다.
– 루터에서 한글 성경까지, 말씀이 모든 이의 언어가 되기까지
종교개혁의 불씨는 단순한 교리 논쟁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성경을 누구나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급진적 명제야말로, 그 시대 교회 구조를 뒤흔든 핵심이었다. 라틴어로만 접근 가능한 ‘교회만의 성경’이 아닌, 각자의 언어로 쓰인 ‘모든 이를 위한 성경’—이것이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뿌리부터 흔들어 놓은 구조였다. 그는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고, 이 과정은 독일어 자체의 표준화를 불러왔으며, 한 민족의 문해력을 높인 사건이었다. 말씀이 한 민족의 언어로 다가오는 순간, 그것은 단지 종교적 사건이 아니라 문화적 해방이었다.
루터 성경 – 종교개혁과 번역 혁명의 출발점1517년 95개조 반박문으로 촉발된 종교개혁은 루터의 ‘독일어 성경 번역’으로 본격화된다. 루터는 수도원에서 수도사로 살아가며, 원어 성경(히브리어와 헬라어)을 직접 공부했고, 이를 바탕으로 신약을 단 11주 만에 독일어로 번역했다. 이후 구약도 수년에 걸쳐 번역하였으며, 그의 번역은 민중이 처음으로 ‘자신의 언어’로 말씀을 접하게 되는 사건이었다.
루터는 번역에서 단어 하나하나에 ‘독일인의 정서’와 ‘복음의 본질’이 모두 들어가야 한다고 보았다. 예컨대 로마서에서 ‘의롭다 하심’을 ‘하나님이 관계를 회복하셨다’는 동사형 표현으로 바꾼 점은 단순한 언어 선택이 아니라 신학적 결단이었다. 그의 번역은 후대 독일어 문학, 교회음악, 찬송가 형식에 이르기까지 깊은 영향을 끼쳤고, 종교개혁의 지적·문화적 기반을 제공했다.
틴데일과 영어 성경 – 피로 쓴 번역의 역사영국에서는 윌리엄 틴데일이 루터보다 더욱 극적인 번역의 삶을 살아갔다. 그는 1526년 최초의 인쇄된 영어 신약성경을 출판했지만, 로마 가톨릭의 박해를 받아 결국 화형당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주여, 영국 왕의 눈을 열어 주소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순교 후 75년이 지나, 영국 국왕 제임스 1세는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영어 성경인 ‘킹제임스 성경’을 후원하게 된다.
킹제임스 성경(KJV)은 1611년 공식 발간되어 지금까지도 영어권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성경으로 남아 있다. 틴데일의 번역이 ‘민중의 성경’이었다면, KJV는 ‘국가의 권위로 인정받은 성경’이었다. 고전 영어의 운율과 장중한 문체, 시적인 구문은 성경을 문학작품이자 신앙문서로 확고히 자리잡게 만들었다.
한글 성경 – 말씀은 한국인의 언어로도 온다한국에서 성경 번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세기 말 선교사들의 입국과 함께였다. 가장 이른 한글 성경은 1887년 존 로스(John Ross)와 서상윤이 번역한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서’였다. 이때의 번역은 한문 위주의 문체에 백성들이 쉽게 읽지 못했다. 이후 언더우드, 아펜젤러 등의 선교사들과 황해도 출신 토박이 성경번역자들이 연합하여, 1910년 최초의 신·구약 완역본 ‘구약젼셔’가 탄생한다.
초기 한글 성경은 문체의 문제로 인해 ‘말씀이 멀다’는 느낌을 줬지만, 이후 현대 한국어 문체에 맞춘 개역한글판(1938년), 개역개정판(1998년), 공동번역, 새번역 등의 흐름을 통해 점점 독자 친화적 구조로 발전했다. 성경의 표현은 점점 현대어로 옮겨졌지만, 본문의 권위와 메시지는 지켜지려는 노력이 지속되어 왔다. 지금 우리가 접하는 한글 성경은 그 수많은 번역자의 피와 땀, 시대의 고민과 성도들의 갈망이 깃든 결과물이다.
오늘날의 번역 – 기계 번역 시대에 성경은 어떻게 유지되는가21세기에 들어 번역은 더 이상 사람의 영역만이 아니다. AI 기반 번역기가 등장하면서 성경도 기계 번역 실험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문화와 역사, 신학과 종교성이 결합된 ‘해석의 텍스트’이기 때문에, 여전히 신학자와 언어학자, 목회자들의 협업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특정 대상에 맞춘 ‘청소년 성경’, ‘난독자를 위한 쉬운 성경’, ‘청각장애인을 위한 영상 성경’ 등 다양한 특수 번역도 등장하고 있다. 번역은 이제 단순한 언어 문제가 아니라, 말씀의 접근성과 포용성, 그리고 문화권의 다양성을 고려하는 ‘목회적 사역’의 일환이 되어가고 있다.
말씀은 번역될 수 있고, 동시에 변하지 않는다성경은 수천 번 번역되었고, 수십억의 독자들에게 읽혔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 어떤 언어로도 변질되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이에게 열려가고 있다. 번역의 역사란 곧 하나님의 말씀이 더 가까이, 더 넓게 퍼져가는 여정이었으며, 번역된 말씀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언어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성경 번역의 역사는 단지 기록의 변형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언어의 경계를 넘는 역사였다. 말씀이 사람의 말로 들려진다는 이 사실이, 성경을 책 이상의 생명의 메시지로 만들어주었다. 오늘 우리가 읽는 그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도 수백 년의 땀과 기도, 그리고 믿음의 흔적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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