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여성들, 잊혀진 이름을 다시 읽다

– 하나님은 이름 없는 자를 잊지 않으신다

성경을 읽다 보면, 무심코 지나치게 되는 인물들이 있다.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은 여인들, 단 몇 구절에만 등장하고는 사라지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성경의 중심 인물도 아니고, 대사도 거의 없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는 조용하면서도 강력하게 복음의 서사 속에 깊이 스며 있다. 하나님은 이름 없는 자를 잊지 않으신다. 이 글은 그 잊힌 여인들의 삶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흔히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열왕기하 4장에 나오는 수넴 여인은 대표적인 예다. 성경은 그녀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고, 단지 “수넴에 한 귀한 여인이 있으니”라고만 소개한다. 하지만 그 이름 없는 한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알아보고, 자발적으로 자신이 사는 집 위에 방을 만들고 그의 필요를 돌본다. 엘리사를 통해 아이를 얻고, 그 아이를 잃었다가 되찾는 기적을 경험하는 이 여인의 이야기는 짧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하나님은 이 이름 없는 여인의 믿음과 섬김을 통해 기적을 베푸셨고, 그녀의 이름은 사라졌지만 믿음의 흔적은 성경에 또렷이 남았다.

예수님께 나아온 가나안 여인도 마찬가지다. 마태복음 15장에 기록된 이 여인은 이름도 없고, 유대인도 아니며, 제자들에게조차 불청객처럼 취급된다. 그러나 그녀는 낙심하지 않고, 자신을 향한 거절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다.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 말은 단순한 절박함이 아니라, 깊은 믿음과 겸손, 그리고 예수님의 자비를 신뢰하는 신앙의 고백이다. 예수님은 그런 그녀에게 말씀하신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복음서 전체를 통틀어 예수님께 직접 ‘믿음이 크다’는 칭찬을 받은 인물은 이 여인이 유일하다. 이름 없이도 그녀는 복음의 중심에 있다.

이름 없이 등장한 여인들은 결코 주변 인물이 아니다. 성경은 그들의 섬김과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은 하나님의 시선 안에서 기억되고 선택된 자들이었다. 이름이 없다는 이유로 평가절하되거나 무시당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이름 없음 속에 하나님의 의도가 숨어 있었다. 하나님은 인간의 이름이나 지위가 아니라, 그 마음과 믿음을 보시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수많은 여인들이 등장한다. 그 중 일부는 이름이 기록되고, 일부는 이름 없이 역할로만 소개된다. 하지만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인물을 통해 어떤 일을 이루셨는가이다. 수넴 여인은 환대를 통해 하나님의 기적을 맞이했고, 가나안 여인은 믿음을 통해 자신의 딸을 치유받았다.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자세이고, 삶의 태도다.

오늘날 우리도 이름 없는 존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드러나지 않는 삶, 인정받지 못하는 수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이들을 통해 여전히 일하고 계신다. 수넴 여인처럼, 가나안 여인처럼, 믿음을 품고 행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신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기억되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잊지 않으신다.

성경은 종종 중심 인물이 아닌 자들을 통해 중심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이름 없는 여인들이 보여주는 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이름을 남기는 삶’이 아닌, ‘하나님의 기억에 남는 삶’을 추구하게 한다. 하나님은 오늘도 누군가의 이름을 성경에 추가하듯 우리의 일상과 헌신을 그의 구속사 안에 기록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름을 알리는 데 집착할 필요가 없다. 조용히 말씀에 반응하고, 복음 앞에 서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 족보에 남겨진 은혜, 지워지지 않은 구속의 기록

마태복음 1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로 시작된다. 아브라함부터 다윗, 그리고 바벨론 포로기를 지나 마침내 예수께 이르는 이 계보는 유대인의 역사와 하나님의 언약이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보여주는 문장들의 연속이다. 대부분은 남성 이름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안에 유독 눈에 띄는 다섯 명의 여인이 등장한다. 다말, 라합, 룻, 밧세바(우리아의 아내), 마리아. 이 여성들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주목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세상의 시선으로는 숨기고 싶은 사연과 불완전한 조건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족보 안에 당당히 기록되었다.

그중 밧세바는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았다. 성경은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이 나고”라고만 말한다. 그 이름은 지워졌고, 그녀가 겪었던 수치와 고통은 그 관계성을 통해 암시될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침묵의 기록에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어떻게 쓰시는지를 본다. 인간의 관점으로는 숨기고 싶은 이야기, 신앙의 역사 속에 넣기 어려운 인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사람을 지워버리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런 인물을 통해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셨다. 밧세바는 권력의 피해자였고, 다윗의 죄악 속에서 상처 입은 여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기록된 어머니로 남는다. 그것은 인간의 기준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은혜이며, 구속사의 논리로만 가능한 복음의 진실이다.

다말 역시 특이한 방식으로 족보에 들어온 인물이다. 그녀는 유다의 며느리였지만 시아버지를 통해 자식을 얻는다. 정결과 거룩을 강조하던 유대사회에서 이 이야기는 분명히 낯설고 불편하다. 그러나 다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정의와 약속이 어떻게 예상을 넘어 작동하는지를 목격한다. 당시 여성은 자식을 통해서만 가문 안에서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유다는 다말에게 자식을 주지 않음으로써 그녀를 사실상 외면했고, 다말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 약속을 돌려세운 것이다. 성경은 그녀를 정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를 통해 유다의 자손이 이어지고, 메시아의 혈통이 유지된다.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의 구조를 넘어선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한 여인의 용기와 절박함이 있다.

여리고 성에서 이스라엘 정탐꾼을 숨겨준 라합도 그렇다. 기생이라는 사회적 낙인, 이방인의 신분, 정치적으로 위태로운 입장. 그러나 라합은 그 모든 조건을 넘어서 여호와의 하나님을 믿었고, 그 믿음은 그날 밤 이스라엘의 운명을 바꿨다.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두 사람을 숨겼고, 그 믿음은 성경에 명확히 기록되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장으로 불리는데, 그 안에 라합이 등장한다. 기생이라는 단어가 부끄럽게 반복되지만, 하나님은 그녀의 과거가 아닌 믿음을 보셨다. 그녀는 이후 보아스의 어머니가 되었고, 예수님의 족보 안에 이방인 여인으로 남게 된다.

룻은 모압 여인이다. 유대인 공동체 안에서 모압 출신은 종교적으로나 혈통적으로 배제되기 쉬운 조건이었다. 하지만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가고, 그곳에서 보아스를 만나 다시 가문을 세운다. 그녀의 고백은 유명하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의 삶은 충성, 겸손, 그리고 용기의 이야기다. 이방인이며 여성이며 가난한 과부였던 그녀는 메시아의 계보 안에 하나님께서 직접 초대한 인물이다.

이 다섯 여인은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적으로는 약자였다. 성적 수치, 가정의 파탄, 혈통의 문제, 이방인이라는 배경,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는 서글픔까지. 그러나 그들은 하나같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 아니,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들을 통해 복음의 길을 여셨다. 이 계보는 단순히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하는 족보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어떤 조건 속에서도 쓰시는지를 선언하는 구원의 도장이다.

우리도 종종 이름 없이 살아간다. 주목받지 못하고, 드러나지 않고, 사람들의 기억에 남지 않는 삶. 그러나 하나님은 기억하신다. 하나님은 밧세바의 이름을 지운 것 같지만, 그녀의 존재를 족보에 남기셨다. 라합의 직업을 숨기지 않으셨고, 룻의 출신을 감추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구원은 드러난 사람들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숨겨진 사람들, 잊힌 사람들, 가려진 인물들을 통해서도 확장되어 왔다.

성경 속 여성들의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말한다. ‘너는 이름이 없어도 괜찮다. 나는 너를 알고 있다.’ 하나님의 시선은 결코 소란스럽지 않다. 그러나 그 시선은 단 한 사람도 놓치지 않는다. 우리는 그 시선 안에서 살아간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매일말씀저널 | 기획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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