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오늘 한국 정치에 대해 말씀하신다면?” – 선거철, 기독교인의 양심 투표란 무엇인가

예수님이 오늘 한국 정치에 대해 말씀하신다면? – 정당보다 사람을, 권력보다 정의를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당대 유대사회에서 충격적인 선언이었다. 로마 제국의 압제 아래 ‘정치 참여’와 ‘신앙 고수’ 사이에서 방황하던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대신, 완전히 다른 차원의 기준을 제시하셨다. 복음은 정권이 아닌 하나님 나라에 속한 시민권을 말하고, 참된 권위는 세상 권력에서가 아니라 하늘의 뜻에서 비롯됨을 드러내셨다. 이 말씀은 2,00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정치 현실과 기독교 신앙의 관계를 되묻게 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매 선거 때마다 격렬한 정치적 양극화와 정당 갈등을 반복한다. 거대 여야의 이념 대립은 단순한 정책 경쟁을 넘어서 ‘적대적 정치 정서’로 굳어지고 있고, 교회마저도 특정 정당 지지에 따라 갈라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어느 쪽이 더 기독교적 가치를 담고 있는지, 어떤 후보가 더 하나님 뜻에 가깝다고 판단할 수 있는지조차 혼란스럽다. 우리는 지금, “기독교인은 누구에게 투표해야 하는가?”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예수님이라면, 지금 한국의 정치와 권력을 어떻게 보실까?”

예수님은 권력을 어떻게 대하셨는가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정치권력과 종교권력 모두에 대해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셨다. 유대인들은 로마제국의 식민 통치 하에서 정치적 해방을 열망했고, 예수님에게 메시아로서의 ‘정치적 역할’을 기대했다. 군중이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 할 때, 그분은 즉시 자리를 피하셨다(요한복음 6:15). 심지어 빌라도 앞에서조차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요한복음 18:36).

그러나 예수님은 무관심하지 않으셨다. 당시의 불의한 세금 제도, 과부를 억누르는 율법, 외식하는 지도자들의 위선을 고발하셨고, 무엇보다 소외된 자들을 만나 주셨다. 그의 정치적 태도는 ‘비참여’가 아니라 ‘초월을 통한 개입’이었다. 예수님은 현실 정치에 도구로 쓰이지 않으셨고, 권력의 논리를 따르지 않으셨지만, 누구보다 그 체제의 피해자들과 함께하셨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사랑이라는 기준을 세상의 모든 제도 위에 놓으셨다.

기독교인의 정치 참여, 방향은 있는가

신앙과 정치의 관계에서 크리스천이 던져야 할 핵심 질문은 “참여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결정된 사실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시민으로서 세금도 내고, 투표도 하고, 법의 보호도 받는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로서, 우리는 정당의 논리보다 진리를 따르고, 인기보다 양심을 붙들고, 집단적 선동보다 공동체의 회복을 택할 수 있는가?

많은 기독 유권자들이 정치적 판단을 내릴 때 ‘기독교적’이라는 이유만으로 후보를 지지하거나, 특정 정당이 ‘교회 친화적’이라는 이유로 선거 전략을 결정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준은 훨씬 더 명확하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눌린 자가 자유케 되며, 눈먼 자가 보게 되며, 상처 입은 자가 싸매어지는가?” 예수님은 언제나 힘 있는 자 편에 서신 것이 아니라, 정의롭지 못한 체제 안에서 고통받는 자 편에 서셨다.

선거는 신앙의 고백이다

총선이든 대선이든, 투표란 단지 개인의 의견을 표현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를 향한 책임이며, 복음적 세계관을 실천하는 기회다. 그렇기에 우리가 행사하는 한 표는 ‘누가 나에게 유리한가’보다는 ‘누가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더 가까운가’로 판단되어야 한다. 공의, 정직, 연민, 책임감, 투명성, 약자 보호 같은 기준이 우선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완전한 후보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방향성은 선택할 수 있다.

‘양심의 투표’란 완벽한 후보를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더 부합하는 방향을 향해 신앙으로 움직이는 결정이다. 우리가 종교적 자유를 지킬 수 있는 후보, 생명을 존중하는 정책을 펼 후보,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는 정당을 선택하는 것—이 모든 것이 곧 신앙의 실천이 될 수 있다.

교회는 정치적이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세상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한국 교회는 정치에 너무 깊이 개입했다는 비판과 동시에, 시대적 정의 앞에 침묵해왔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는다. 양극단 모두 진실의 반쪽이다. 교회가 정당의 대변인이 되는 순간 복음은 훼손되고, 교회가 불의한 사회구조에 눈감는 순간 예언자적 사명은 무너진다. 교회는 세상의 정치적 코드와 분리된 위치에서 예수님의 시선으로 이 땅을 진단하고 경고하며 회복을 외치는 곳이어야 한다.

이 땅의 크리스천이 해야 할 일은 ‘정권 교체’나 ‘정당 사수’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 정치의 일이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그 위에 서야 한다. 우리가 붙드는 것은 복음이지 세속적 권력이 아니다. 우리가 따르는 것은 정당이 아니라 예수님이시다. 그리고 그분은 늘 이렇게 물으신다. “너희는 정의를 행했느냐? 긍휼을 베풀었느냐? 겸손히 나와 함께 걸었느냐?” (미가 6:8)

– 예수님이 투표 용지를 받으셨다면, 어떤 기준을 따르실까

예수님이 오늘, 대한민국의 한 유권자로서 투표소에 들어가신다면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실까? 세속적 가치와 성경적 기준이 충돌하는 시대, 크리스천은 선거 앞에서 한 표를 어떻게 행사해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이 고민의 중심에는 정치라는 인간의 제도 위에 계시는 하나님, 그리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시선이 놓여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당대 권력자들과 거리를 두셨지만, 정치적 구조 안에 갇힌 사람들과는 가까이 하셨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의 정치 문법 안에서도 복음은 여전히 유효한가? 예수님이 투표 용지를 받으신다면, 우리는 어떤 영적 기준으로 그분을 따를 수 있을까?

정당보다 가치, 이념보다 사람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은 정당 중심적이다. 대중은 ‘어느 편이냐’는 질문 앞에 끊임없이 줄을 세운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열이 아닌 하나됨을 향해 걸으셨다. “스스로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누가복음 18:9)에게 날을 세우셨고, 정치적·사회적 경계를 넘어 사마리아인과 여인, 세리와 죄인까지도 품으셨다. 그분은 언제나 소속보다는 ‘마음의 중심’을 보셨다.

정당은 정책을 구현하는 수단일 뿐, 결코 복음의 본질이 아니다. 복음은 공의를 흐리는 정치인을 정죄하지만, 동시에 진실된 회개를 향한 기회의 문을 닫지 않는다. 크리스천 유권자는 정당의 색깔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어디에 더 가까운지를 기준으로 선택해야 한다.

표심이 아닌 양심으로 선택하라

정치적 이해관계는 단기적으로 표를 결정하지만, 신앙적 양심은 장기적 책임을 요청한다. 그리스도인은 정권의 수혜자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의를 세우는 책임을 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셜 미디어의 감정적 선동이나 정치인의 말재주보다, 후보의 삶과 정책, 과거의 행동과 철학을 종합적으로 따져야 한다.

양심적 투표란 단지 도덕적으로 깨끗한 후보를 찾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묻고, 그 방향에 걸맞은 리더십을 신중히 결정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마태복음 7:16)라고 하셨다. 크리스천은 공약보다 ‘그 사람의 열매’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소수자에 대한 태도, 여성과 가정, 청년과 노년, 장애인과 이민자에 대한 접근을 보면, 진짜 복음적 가치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선택 후에도 기도와 책임은 계속된다

기독교인은 선거로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 이후에도 계속 기도하고 감시하며 책임져야 하는 존재다. 특정 정당을 지지했든, 반대했든, 결과에 따라 환호하거나 좌절할 게 아니라, 나라의 공의와 회복을 위해 계속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에게 순종하면서도, 불의한 정책에 대해선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전하셨지만, 사회의 불의와 모순에도 침묵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우리는 선거를 마친 후 더 뜨겁게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이 나라가 정의를 사랑하게 하시고, 지도자들이 교만하지 않게 하시며, 가난한 자를 외면하지 않게 하소서.” 이런 기도가 있는 한, 크리스천의 정치 참여는 신앙의 연장이 될 수 있다.

정치에 참여하되, 정치에 종속되지 마라

교회가 정치적 선동의 도구가 되는 순간, 복음은 권력의 들러리가 된다. 그러나 교회가 정치적 현실을 외면하는 순간, 복음은 세상의 고통 앞에 무기력해진다. 예수님은 언제나 권력의 중심이 아닌 가장 낮은 곳에 계셨고, 그분의 진리는 변하지 않는 정의였다. 크리스천은 이 땅에서 정치에 참여하지만, 그 어떤 진영에도 종속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대사이자, 이 땅의 빛과 소금이다.

“예수님이 오늘 한국 정치에 대해 말씀하신다면?” 그분은 어떤 정당을 지지하셨을까? 어떤 후보를 선택하셨을까? 우리는 그것을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분은 여전히 약자와 함께 계시고, 불의한 권력 앞에서 침묵하지 않으셨으며, 지금도 정의와 긍휼과 겸손을 행하는 자를 찾고 계신다. 그리고 그런 이들의 선택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 위에 조금씩 세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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