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전능하시다. 그렇다면 왜 즉각 응답하지 않으실까? 능력이 부족하신 것도, 우리의 기도를 듣지 못하시는 것도 아닌데, 우리가 간절히 구하는 그 기도의 응답은 종종 너무도 느리게 다가온다. 어떤 때는 아무런 응답도 없는 것처럼 보이고, 오히려 상황은 더 나빠지기도 한다. 우리는 그 침묵 앞에서 당황하고, 실망하고, 때로는 하나님을 오해한다. “내 기도는 무시당하고 있는 걸까?” “혹시 내가 믿음이 부족해서일까?” “하나님이 나를 벌하시는 건가?”
이런 질문은 신앙의 깊은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나온다.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간절히 묻는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성경의 대답은 단순하지 않다.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시고, 전능하시며, 우리의 기도를 반드시 들으신다. 그러나 그 응답은 우리가 원하는 시간과 방식이 아닐 수 있다. 그렇기에 신앙은 하나님의 침묵을 받아들이는 훈련이기도 하다.
예수님조차 지체하셨다
요한복음 11장, 나사로의 이야기는 이 질문에 대한 신학적 핵심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사랑하시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곧장 가지 않으셨다. 나사로의 누이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이 빨리 오실 것이라 기대했지만, 예수님은 일부러 이틀을 더 머무셨다. 그리고 나사로는 죽었다. 인간적으로 보면 너무도 잔인한 침묵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
하나님은 우리의 시간표를 따라 움직이지 않으신다. 그분은 목적을 따라 움직이신다. 우리가 보기엔 늦은 것이고, 이미 끝난 일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는 그 늦음 속에 더 큰 영광과 계획이 담겨 있다. 응답이 지연되는 그 모든 시간은 ‘침묵’이 아니라 ‘준비’의 시간이다. 단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하나님은 즉시보다 ‘깊이’를 원하신다
우리는 자주 ‘빠른 응답’을 구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안의 ‘깊은 변화’를 바라보신다. 기도가 지연될 때, 우리는 하나님께 더 묻기 시작한다. “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지?”라는 질문은 곧 “하나님, 제 안에 어떤 뜻이 있나요?”라는 질문으로 전환된다. 그리고 이 질문은 단지 문제 해결이 아니라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기도가 길어질수록 내 기도 제목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한 적 있는가? 처음엔 “이 문제 해결해주세요”였던 기도가, 시간이 지나며 “이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을 놓치지 않게 해주세요”로 바뀌고, 결국엔 “하나님, 제가 이 문제를 통해 배우게 하시는 것이 무엇인가요?”로 변해간다. 이 변화가 바로 지연된 응답 속에서 하나님이 이루시는 깊이 있는 응답이다.
성경은 ‘기다림의 사람들’로 가득하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25년을 기다려 이삭을 얻었다. 다윗은 기름 부음 받은 후 십수 년간 도망자 신세로 살았고, 요셉은 꿈을 꾸고 나서 13년이 지나서야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 그 시간 동안 하나님은 침묵하신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들의 내면을 다듬고 믿음을 성숙시키는 시간이었다.
이사야 30장 18절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하나님이 기다리시는 이유는 단 하나, 은혜를 더 깊고 넓게 주시기 위함이다. 지체하심은 은혜의 포기나 지연이 아니라, 확장의 과정이다. 단지 아직 우리의 그릇이 준비되지 않았을 뿐이다.
기다림은 곧 신뢰의 척도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으면 기다릴 수 없다. 아무 약속 없이 기다리는 일ほど 고된 일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을 주셨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마태복음 7:7). 우리는 이미 약속된 응답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다. 지금 보이지 않아도, 아무 변화가 없어도, 하나님은 응답을 준비하고 계신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믿느냐는 것이다.
신앙은 ‘응답의 결과’가 아니라 ‘기다림의 태도’에서 증명된다. 우리가 원하는 방식이 아닐지라도, 우리가 원하지 않는 시간일지라도, 하나님이 여전히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듣고 계심을 믿는 것. 그것이 진짜 믿음이다. 하나님은 기다림 속에서도 역사하시고, 응답이 없는 그 자리에서도 우리를 붙드신다.
지금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면, 그 침묵을 두려워하지 말자. 그분은 듣고 계시며, 준비하고 계시며, 단지 더 좋은 것을 위해 지금 ‘멈추고 계신 중’일 수 있다. 기다림은 그분의 신뢰를 확인하는 은혜의 시기다.
기도는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시간은 흘러가고, 상황은 더 나빠지거나 그대로일 뿐이다. 처음에는 매일 기도했다. 간절히, 눈물로, 믿음으로.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기도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기대도 점점 사라진다. 기도 응답을 믿었던 확신은 희미해지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런 속삭임이 들려온다. “기도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이런 경험은 모든 신앙인이 한 번쯤은 겪는다. 문제는 이 시간 동안 하나님이 침묵하신다는 느낌이다. 하나님이 계시긴 한 걸까? 내 기도를 듣고 계신 걸까? 아니면 이미 나를 외면하신 걸까?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말한다. 응답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조차, 하나님은 가장 깊이 일하고 계신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질문하게 된다. 그리고 이 질문이 계속 쌓이다 보면, 기도 자체를 피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바로 이때가 가장 중요한 시기다. 기도가 잘 안 되는 그때야말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질 수 있는 결정적 기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기도에 대한 ‘결과’보다 기도하는 ‘과정’에서 우리를 만나신다.
믿음은 응답이 없을 때 증명된다
진짜 믿음은 언제 드러나는가? 기도한 대로 일이 잘 풀리고, 응답이 빠르게 올 때일까? 아니다. 오히려 기도했지만 아무 변화가 없고, 상황은 더 나빠졌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진짜 믿음을 가진 자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다”(하박국 3:17–18). 그는 기도의 응답이 없어도 하나님 자체가 기쁨의 이유라고 고백했다. 이 고백은 응답이 없는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을 선택한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신다. 그러나 그 응답의 방식과 시간은 우리 기준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영원’을 보신다. 우리의 기도는 일시적 문제 해결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그 기도를 통해 우리의 성품, 태도, 신앙, 존재 전반을 빚어가고 계신다.
기다림 속에서 해야 할 세 가지
첫째, 정직하게 하나님께 감정을 표현하라. 성경은 기도를 감추라고 말하지 않는다. 시편을 보면 다윗은 분노, 슬픔, 두려움, 낙심, 원망까지도 솔직히 하나님께 쏟아놓는다. 하나님은 우리가 완벽한 믿음으로만 기도하길 원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연약함 가운데 드리는 솔직한 기도를 더 기뻐하신다.
둘째, 말씀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응답이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 된다. 상황은 변하지 않아도, 말씀은 우리의 시선을 바꿔준다. 기도는 우리의 바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고,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받는 통로다. 응답 없는 시간을 지나는 동안, 말씀에 머물러야 방향을 잃지 않는다.
셋째, 기억하라. 하나님이 응답하셨던 때를. 우리는 쉽게 잊는다. 예전에 분명히 응답하셨던 하나님을, 이전에 도우셨던 순간을, 울부짖던 기도에 눈물로 반응하셨던 그날을. 기억은 믿음을 붙드는 힘이 된다. 하나님은 어제와 오늘과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지금 침묵하시는 것 같아도, 그분의 성품은 변하지 않았다.
기다림은 복이다
이사야 40장 31절은 말한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여기서 ‘앙망하다’는 말은 단순한 기다림이 아니라,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태도를 의미한다. 기다림 자체가 복이 되는 것은, 그 기다림 안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이 기도하고 있음에도 아무 변화가 없다면, 절망하지 말라. 하나님은 침묵으로 당신을 멀리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침묵 속에서 더 깊은 뜻을 이루고 계신다. 때로는 우리의 기도보다 더 나은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혹은 우리 안에 아직 준비되지 않은 부분을 다듬기 위해, 하나님은 응답을 ‘멈추는 것처럼’ 보이게 하신다.
그러나 그분은 여전히 일하고 계신다. 지금도, 당신의 눈물이 멈추지 않는 그 새벽에도, 당신이 지친 어깨로 하루를 견디는 그 오후에도,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다. 오히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당신을 붙들고 계신다.
그러니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머물러 있으라. 응답이 없다고 그 자리를 떠나지 말고, 느껴지지 않아도 그 이름을 부르라. 하나님은 그 부름에 반드시 응답하실 것이다. 때가 차면, 반드시. 그분의 시간, 그분의 방법으로. 그리고 당신은 그때, 깨닫게 될 것이다. 지연된 기도 속에 담겨 있던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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