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경과 위경 – 정경 밖 문서들은 어떻게 분류되고 이해되어야 하나?

우리가 오늘날 손에 쥐고 있는 성경 66권은 교회사 속에서 치열한 논의와 신학적 분별을 거쳐 정경으로 확정된 결과물이다. 그러나 성경이 지금의 형태로 결정되기까지, 수많은 문서들이 정경 외부에서 함께 읽히고 논의되었다. 이 문서들은 대체로 ‘외경’ 혹은 ‘위경’으로 분류되며, 정경과는 다른 위치에 있으나 그 존재와 성격은 기독교 역사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외경은 교훈적이지만 신적 영감은 인정되지 않은 문서들을 가리키고, 위경은 사도나 선지자의 이름을 빌려 신분을 위조한 채 기록된 것으로 간주되는 문서들이다. 이 두 부류는 모두 ‘성경 밖의 문서’라는 공통점을 갖지만, 성격과 평가, 영향력 면에서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외경(Apocrypha)의 정의와 배경외경은 헬라어 ‘아포크리파’(ἀπόκρυφα), 즉 ‘숨겨진 것’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했으며, 정경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오랜 시간 유대교나 교회 안에서 경건한 문서로 간주된 책들을 말한다. 이 문서들은 대부분 기원전 200년에서 기원후 100년 사이에 쓰인 것으로, 유대인 디아스포라 공동체나 헬라 문화에 영향을 받은 유대인들 사이에서 많이 읽혔다. 예를 들어 토비트서, 유딧서, 지혜서, 집회서(시락), 마카베오기 상·하, 바룩서 등이 대표적이다. 외경의 내용은 대체로 신앙적 교훈, 윤리적 조언, 민족의 역사 또는 기도문과 같은 형태를 띠며, 정경과 유사한 문체와 주제를 지닌 경우도 많다.

이 문서들이 성경 정경에 포함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히브리 성경에 없다는 점 때문이다. 유대교의 최종 정경 목록(타나크)은 외경을 포함하지 않았으며, 히브리 원문이 존재하지 않거나 불완전하다는 점에서 제외되었다. 또한 예수님과 사도들이 외경을 직접 인용하거나 권위를 부여한 흔적이 없다는 것도 배제의 근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경은 초대 교회와 중세 교회 내에서 일정 수준의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일부 교부들은 그 유익성과 경건성을 인정하였다.

외경의 역할과 영향력가톨릭 전통에서는 외경 중 일부를 ‘제2정경’(Deuterocanon)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트렌트 공의회(1546년)에서 이를 공식화했다. 이 문서들은 가톨릭 성경에는 정경과 동등한 위치로 포함되어 있으며, 실제로 많은 가톨릭 신자들에게 신앙과 윤리의 교훈으로 기능하고 있다. 반면 개신교에서는 루터를 중심으로 외경을 정경에서 제외하되, ‘유익한 읽을거리’ 정도로 평가하고 예배나 교리적 근거로 삼지는 않는다.

외경은 성경과 직접 충돌하지는 않지만, 복음의 핵심 진리와 신학적 일관성을 위협할 여지는 있다. 예를 들어 마카베오기서에서는 연옥에 대한 암시로 해석될 수 있는 기도 행위가 등장하고, 집회서에서는 행위 중심의 의로움이 강조되는 구절들이 있어, 신약의 구원론과 긴장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이러한 점은 외경의 유익성을 인정하되, 교리 형성의 근거로는 삼지 않도록 분별하는 이유가 된다.

위경(Pseudepigrapha)의 정의와 특성이와는 달리, 위경은 단순한 교훈서 수준을 넘어서 ‘신분을 위조한 문서’라는 점에서 그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위경은 히브리어 또는 헬라어로 쓰인 다양한 문서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체로 구약과 신약 사이의 공백기 또는 사도시대 이후 등장했다. 이 문서들은 겉보기에는 사도 베드로나 야고보, 구약 인물인 에녹, 아담, 아브라함 등의 이름으로 쓰였지만, 실제 저자는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에녹서’, ‘희년서’, ‘아담과 하와의 생애’, ‘열두 족장의 유언’, ‘도마복음’, ‘베드로의 묵시록’ 등이 있다.

위경은 외경보다 훨씬 다양한 주제와 형식을 지니며, 신비주의, 묵시문학, 환상과 계시, 이단 사상까지 폭넓게 포함되어 있다. 많은 위경은 당대 영지주의나 도교적 신비주의와 융합되었고, 심지어 신성을 인간 내면으로 환원시키는 형태의 신관까지 보이기도 한다. 도마복음은 “천국은 너희 안에 있다”는 표현으로, 복음의 내면화와 주관화를 강조했고, 유다복음은 유다를 예수의 ‘가장 순종한 제자’로 재해석함으로써 십자가의 구속적 의미를 근본적으로 부정한다.

이러한 신학적 왜곡과 이름 도용, 교회의 정통 교리와의 충돌로 인해 위경은 초기 교회로부터 강하게 배척되었고, 사도성, 정통성, 보편성을 기준으로 분별되어 정경에서 제외되었다. 다만, 위경 역시 초대 교회가 어떤 사상과 신비주의에 대응하며 말씀의 경계를 세웠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 외경과 위경

외경과 위경은 단순히 ‘성경이 아닌 문서’로 묶기에는 그 영향력과 역사적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초대 교회는 이 문서들을 접하면서, 무엇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식별하는 긴 여정을 시작했다. 정경은 하루아침에 정해진 것이 아니었으며, 외경과 위경은 그 과정을 더욱 명확히 이해하게 해주는 거울 같은 존재였다. 특히 위경은 정통 교리와의 충돌로 인해 일찍이 교회로부터 거부되었지만, 그 존재 자체는 복음의 본질이 어떻게 왜곡되기도 했는지를 반증하는 귀중한 사례다.

교회는 어떻게 외경과 위경을 분별했는가?초대 교회는 성경 정경을 확립해가는 과정에서 세 가지 기준을 중시했다. 첫째는 사도성과 계시의 출처였다. 문서가 실제로 사도나 예언자에 의해 기록되었는지, 혹은 그들과 직결된 전승에 근거하는지가 매우 중요했다. 둘째는 정통 교리와의 일치 여부였다. 위경 문서 중 많은 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왜곡하거나, 영지주의적 색채를 띠며 인간 내면의 신성을 강조하는 사상을 퍼뜨렸다. 셋째는 교회 공동체의 수용성이다. 정경은 초대 교회가 공동으로 예배, 교육, 복음 선포에 오랜 시간 동안 활용한 문서들로, 지역을 초월한 보편적 권위를 획득한 기록들이었다.

외경은 때로 교회에서 읽혔고 교훈적인 문서로 수용되었지만, 위경은 분명히 ‘거짓된 기록’으로 판단되었으며, 교회를 혼란에 빠뜨릴 위험 요소로 간주되었다. 교부들은 도마복음, 유다복음, 베드로복음, 필립복음 등 수많은 위경 문서들이 성경 본문을 모방하면서도 그 본질을 비틀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강하게 경계했다. 특히 도마복음은 구원의 길을 내면의 깨달음으로 환원시켜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무의미하게 만들었고, 이는 복음의 핵심을 무너뜨리는 이단적 메시지로 간주되었다.

오늘날 외경과 위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외경은 오늘날에도 역사적, 문학적, 신앙 교육적 자료로서 일정 부분 유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마카베오기서에서는 유대 민족이 이방 제국의 탄압 아래에서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싸우고 순교했는지가 생생히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신약의 박해신학과도 연결된다. 집회서와 지혜서 역시 구약의 지혜문학 전통을 계승하면서 당시 사회의 도덕률과 신앙교육의 실천적 원칙을 담고 있다. 다만, 이를 정경과 동등한 권위로 취급하거나, 구원론적·교리적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신학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반면 위경은 그 내용과 구조 자체가 비정통적이다. 단지 유명 인물의 이름을 빌렸다는 이유로 ‘믿을 만하다’고 오해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위경은 우리가 왜 정경을 소중히 여기고, 교회가 복음을 지켜내기 위해 어떤 분별의 과정을 거쳤는지를 배우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위경의 묵시문학적 환상, 천상계 질서, 인간 내면의 신성화 같은 요소는 성경의 구속사적 중심 메시지와 배치되는 경우가 많으며,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길과도 다르다.

정경의 권위는 오늘도 유효하다정경은 더 이상 수정되거나 추가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단지 ‘문서의 완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시를 마무리하셨다는 믿음 때문이다. 정경은 공동체 안에서 오랜 시간 검증된 신앙의 근거이며, 외경과 위경을 구별하는 기준이 되는 영적 표준이다. 정경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분명한 기준이 있다는 것이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우리가 외경과 위경을 연구하고 이해하려는 이유는 이 문서들이 성경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왜 그 책들이 배제되었는가’를 아는 것이, 정경의 신학적 깊이와 교회의 분별력을 더 분명히 이해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성경 밖의 문서들을 보는 일은, 정경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사랑하게 만드는 길이 될 수 있다. 말씀은 경계로 구분되지만, 진리는 경계 너머에서도 진리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진리를 오직 정경 안에서 온전히 밝혀내셨다는 것을 교회는 수천 년 동안 지켜왔다.

매일말씀저널 | 성경지식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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