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을 선택한 기독교인, 낯선 땅에서도 이어지는 신앙의 여정

 

기독교인은 왜 이민을 택하는가

한국 사회에서 ‘이민’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과거에는 일부 부유층이나 특별한 직업군의 선택지로 여겨졌던 해외 이주가, 이제는 중산층 일반 가정의 미래 설계로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다. 특히 2020년 이후 코로나 팬데믹과 정치·경제적 불확실성, 치열한 교육 환경, 경쟁 중심 사회에 지친 젊은 세대 사이에서 해외 이민은 ‘탈출’ 또는 ‘대안’이라는 이름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놀라운 점은 이 흐름 속에 신앙인들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이민을 준비하거나 이미 가족 단위로 떠난 이들의 수가 점점 늘고 있다. 하지만 이민이라는 선택 앞에서, 우리는 진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기독교인에게 이민은 단순한 삶의 이동인가, 아니면 신앙의 전환점인가?”

이민의 동기, 단지 경제만은 아니다

과거에는 주로 경제적 이유가 이민의 주된 동기였다. 더 나은 소득, 안정된 삶, 자녀의 미래 교육을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한국에서의 삶 자체가 버겁다는 심리적 피로감이 이민의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높은 집값과 교육비, 과도한 노동 시간, 줄어드는 여가, 사회적 신뢰의 붕괴까지 복합적인 불만이 작용한다. 특히 교회 공동체에서도 신앙생활 자체가 삶의 피로를 덜어주는 기능을 충분히 하지 못할 때, 이민은 단순한 경제적 결정이 아니라 ‘내 영혼이 쉴 곳’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 되기도 한다.

이민, 신앙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문제는 이민이 신앙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는 점이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민 후에도 교회를 찾아 열심히 신앙생활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떠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언어의 장벽, 문화적 차이, 교회 시스템의 차이, 일상의 불안정성은 이전보다 더 깊은 영적 외로움과 신앙의 침체를 경험하게 만든다. 특히 한국 교회의 공동체적 예배 문화에 익숙한 이들이 개별주의적 문화의 현지 교회에 적응하지 못해 신앙에서 멀어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믿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문화적 소속을 넘어 영적 중심이 되어야 함에도, 현실은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교회의 시선, 비난이 아닌 동행이어야

이민을 선택한 신앙인들을 바라보는 한국 교회의 시선은 여전히 이중적이다. “세속적 선택이 아니냐”, “믿음보다 물질을 택한 것 아니냐”는 비판적 시선도 존재하지만, 동시에 떠나는 성도에 대한 현실적 공감과 안타까움도 있다. 중요한 것은 교회가 이 흐름을 어떻게 해석하고 수용하느냐다. 이민은 분명 한국 교회에 위기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해외로 흩어진 신자들이 새로운 곳에서 복음의 씨앗이 되도록 돕는 일, 그 자체가 선교의 확장일 수 있다.

출애굽, 혹은 바벨론 포로의 여정

성경 속에도 ‘이주’는 계속 등장한다. 아브라함의 가나안 이주, 야곱의 이집트 이주, 모세의 출애굽, 바벨론 포로와 귀환, 신약의 바울 선교 여행까지 하나님의 백성은 늘 ‘이동하는 존재’였다. 중요한 것은 그 이동이 단순한 지역적 변화가 아니라 신앙의 결단과 순종이었느냐는 것이다. 오늘날의 이민 역시 같은 질문을 필요로 한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는가?” “그곳에서 나는 누구로 살아갈 것인가?” 이 물음 없이 떠나는 이민은, 단지 새로운 삶의 터전일 뿐 하나님 나라를 향한 여정은 아닐 수 있다.

디아스포라 교회, 새로운 도전과 과제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흩어진 자들은 늘 복음 전파의 중심이 되었다. 유대인 디아스포라 공동체는 초대교회의 핵심 기반이었고, 한국 초기 이민자들의 신앙은 미국, 캐나다, 호주 등지에서 교회를 세우고 공동체를 이뤘다. 오늘날의 이민 신자들도 그 연장선에 있다. 다만 문제는 오늘의 디아스포라 교회가 신앙의 근거지를 유지하기보다는, 정체성을 잃고 문화적·세속적 동화 속에서 방향을 잃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한국 교회는 이들을 위한 선교적 전략과 목회적 돌봄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떠나는 자들과 남는 자들의 연대

이민이라는 현실 앞에서 교회는 이분법적으로 반응하기보다, 떠나는 자들과 남는 자들 모두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해하는 공동체적 시선을 가져야 한다. 이 땅에 남아 한국 사회와 교회를 지키는 사명도 필요하고, 흩어진 곳에서 새로운 복음의 장을 여는 사명도 귀하다.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이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졌는가 하는 신앙의 중심성이다. 교회는 떠나는 자를 비난하는 대신, 떠나는 이유와 과정을 경청하고, 그 여정 속에서도 예배와 말씀, 공동체가 이어질 수 있도록 다리를 놓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이민 이후의 신앙, 지켜야 할 것들

이민은 단순한 국경의 이동이 아니다. 삶의 모든 기반이 뒤흔들리는 ‘존재의 재배치’다. 한국에서의 직장, 관계, 신앙 공동체, 문화적 익숙함까지 모두 내려놓고 낯선 땅에서 다시 시작하는 일은, 겉으로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체성과 신앙까지 근본적으로 흔드는 시간일 수 있다. 특히 기독교인에게 이민은 단순한 생활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믿음의 토대가 시험받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이 여정 속에서 “신앙이 나를 붙잡아 줄 것”이라 기대하지만, 현실은 그 기대만큼 녹록지 않다.

언어와 문화, 공동체 단절의 현실

이민 후 신앙생활이 가장 크게 흔들리는 이유는 단연 ‘공동체의 부재’다.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현지 교회를 찾지만, 언어의 장벽 앞에서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거나 예배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문화적 코드의 차이도 어렵다. 한국 교회의 예배는 강한 공동체성과 정서적 유대, 격식과 정열의 리듬이 특징인데, 많은 해외 현지 교회는 이와 다르다. 침묵의 기도가 익숙한 서구식 예배, 개인 중심의 교제, 성경 해석의 차이 등은 적응을 어렵게 한다. 특히 자녀들의 경우, 부모는 이중언어 교회를 원하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지역 사회에 더 익숙해지며 한국적 신앙 문화를 이질적으로 느끼는 일이 발생한다. 결국 가족이 같은 교회를 다니지 못하거나, 신앙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 줄어들면서 가정의 영적 연결이 약해지는 일이 많다.

디아스포라 신앙, 방향을 잃는가

문제는 단순히 예배 참석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기준 자체가 흐려지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주일 성수’가 명확한 기준이었지만, 해외에서는 주일 개념 자체가 애매해지거나 일정이 유동적으로 바뀌면서 예배가 루틴이 아닌 ‘선택’이 되기 쉽다. 이민 초기 생계 유지를 위해 주말 근무를 하는 경우도 많고, 아이들의 스포츠 경기나 지역 커뮤니티 행사 등으로 인해 예배보다 ‘지역 생활’이 우선되기 시작한다. 서서히 예배와 말씀, 기도, 봉사 등으로 이어지는 신앙 루틴이 무너지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자연히 약화된다. 어느 날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여전히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가?”

그러나 신앙은 뿌리보다 줄기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많은 디아스포라 신자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신앙을 회복해 가고 있다. 어떤 이들은 온라인으로 한국 교회를 꾸준히 출석하며 말씀을 지속적으로 공급받는다. 어떤 이들은 이민자들끼리 작은 가정교회를 만들어 예배와 교제를 이어가고, 자녀 교육도 함께 감당한다. 언어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자녀와 함께 이중언어 성경을 읽거나, 주중에는 각자의 현지 교회를 다니고 주말엔 함께 예배하는 구조를 시도하는 가정도 있다. 중요한 것은, ‘신앙의 뿌리’를 유지하려는 노력보다도, ‘신앙의 줄기’를 그 지역에 맞게 새롭게 성장시키려는 의지다. 믿음은 장소에 갇히지 않으며, 하나님은 국경 밖에서도 여전히 살아 역사하신다.

한국 교회의 역할, 파송인가 방관인가

떠나는 성도를 단순히 ‘교세 감소’로 여긴다면, 교회는 시대 흐름을 놓치게 된다. 오히려 흩어지는 성도를 ‘선교적 파송’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 한 가정이 해외로 나간다면, 그 가정은 곧 선교의 거점이 될 수 있다. 온라인 예배, 이민 상담, 지역 커뮤니티 연결, 신앙 콘텐츠 제공, 자녀 교육 가이드 등 교회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많다. 코로나 이후 비대면 예배의 기술은 이미 자리잡았고, 이를 기반으로 한국 교회는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돌보는 새로운 목회 모델을 구축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민 성도들을 위한 전담 부서를 만들고, 선교지처럼 접근하는 전략적 사역이 필요하다.

신앙은 남는 자만의 것이 아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보냄을 받은 자’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땅끝까지 보내신 것처럼, 성도들은 어디에 있든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이민은 한국 사회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세계 속에서 새로운 사명을 감당하는 자리로 갈아타는 것이다. 한국에 남은 성도는 보낸 자로서 기도와 지원을 계속하고, 떠난 자는 흩어진 자로서 현지에서 복음을 살아내야 한다. 떠남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교회는 이 둘을 연결하는 사명 가운데 있다.

이민 시대, 교회는 다시 묻는다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에게 던진 하나님의 질문은 이민자에게도 유효하다.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 어떤 믿음으로, 어떤 사명으로 이 땅에 서 있는가? 이 질문이 단순한 위치 파악이 아니라 정체성과 부르심의 회복으로 이어질 때, 이민은 더 이상 두려움의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새로운 순례다. 교회는 이제, 흩어진 자들을 위한 본향으로서의 사명을 새롭게 회복해야 한다. 머무는 교회와 떠나는 성도가 함께 하나님 나라의 지도를 새로 그리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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