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훈련, 왜 다시 말해야 하는가 (제자훈련 1장)

 

믿음의 길은 제자도의 길로 이어진다


세상은 교인을 만들고, 주님은 제자를 부르신다

“제자훈련”이라는 단어는 이제 교회 안에서 낯설지 않다. 한때 한국 교회의 부흥과 확장을 이끈 핵심 전략이었고, 많은 교회들이 제자훈련을 사역의 중심으로 삼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제자훈련은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전락하거나, 특정 교단만의 방식으로 치부되곤 했다.

오늘날 많은 교회는 다양한 교육과 훈련 과정을 갖추고 있지만, 정작 예수님을 삶으로 따르는 ‘제자’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 이 질문 앞에 다시 서야 한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

예수님은 단 한 번도 사람들을 ‘교인’으로 부르신 적이 없다. 주님은 항상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고, 그 부르심 앞에서 사람들은 직업을, 가족을,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교회에 다니는 것과 예수를 따르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신앙을 교회 출석 여부로 판단해 왔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도 여전히 말씀하신다. “너희는 나를 따르라.” 이 부르심은 단지 특정한 사명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에게 해당되는, 복음의 핵심이자 삶의 방향 전환에 대한 부르심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대에 다시 ‘제자훈련’을 말해야 한다. 과거의 인기 사역을 되살리자는 뜻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깊은 차원에서, 우리는 지금 복음의 본질과 교회의 사명을 회복해야 한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예배당을 세우라’도 아니고, ‘사역자를 키우라’도 아니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 그분의 마지막 명령은, 모든 신자가 ‘제자’를 세우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제자훈련은 교회의 옵션이 아니다. 그것은 교회의 존재 이유이며, 우리가 다시 붙잡아야 할 본질이다.

제자됨은 선택이 아니라, 정체성이다

우리는 자주 제자훈련을 ‘선택’의 문제로 여긴다. 나는 리더가 아니라서, 아직 신앙이 약해서, 시간이 없어서… 다양한 이유로 제자훈련은 ‘특별한 사람만의 길’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언제나 전 인격을 향한 것이었다. “나를 따라오라”는 주님의 음성 앞에서 제자들은 계산하거나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은 그 부르심이 ‘하나의 옵션’이 아니라, ‘삶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았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다음과 같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 마태복음 28장 19-20절

이 말씀은 단순히 전도하라는 명령이 아니다. 그것은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그 복음을 따라 사는 사람, 곧 ‘제자’를 세우라는 명령이다. 그리고 이 명령은 사도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교회와 성도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 순간, 단지 ‘신자’가 아니라 ‘제자’로 부름받았다. 제자됨은 소수의 선택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모두의 정체성이다.

그렇다면 왜 제자훈련이 필요한가?
신앙의 여정은 단지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참된 신앙은 말씀을 따라 사는 삶, 곧 순종의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세상과 타협하고, 게으름과 싸우며, 하나님 없이도 살아가려는 본성에 휩쓸린다. 그래서 제자훈련은 필요하다.

제자훈련은 말씀을 삶의 중심에 두고,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며,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훈련이다. 신앙이 지식에서 멈추지 않고, 삶으로 연결되도록 이끄는 실제적인 길이다.

 

교회가 제자를 세우지 않으면, 무엇을 세우는가?

오늘날 교회의 가장 심각한 위기는 숫자의 부족이 아니다. 예배 출석 인원은 유지되고 있으며, 다양한 온라인 콘텐츠와 프로그램은 과거보다 훨씬 활성화되어 있다. 문제는, 그렇게 풍성한 구조 속에서 정작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교회의 사역이 늘어나는 만큼 제자의 삶도 자라고 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신앙의 지식은 많아졌지만 삶은 변하지 않고, 봉사자는 많지만 예수를 닮은 이는 적다. 교회는 활동으로 바쁘지만, 그 중심에서 ‘제자를 세우는 일’은 점점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초대교회는 달랐다.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베드로의 설교에 수천 명이 회심했지만, 그들의 공동체는 단순히 예배와 교육에 머물지 않았다. 그들은 함께 모여 말씀을 배우고, 떡을 떼고, 삶을 나누었다. 자신의 소유를 팔아 서로를 도우며, 말씀 앞에 자신을 들이는 삶의 공동체였다.

초대교회는 제자를 세우는 공동체였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있었다. 따름은 신념이나 감정이 아니라, 전인격적인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결단이었다.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회복이 필요하다. 교회는 단지 예배를 드리는 공간이 아니라, 삶을 바꾸는 공동체여야 한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예배당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제자를 세우는 데 있다. 제자훈련은 복잡한 시스템이 아니라, 이 단순하고도 본질적인 회복의 통로다. 제자 없는 교회는 건물이 있고, 모임은 있지만, 사명은 없다. 방향을 잃은 교회는 결국 세상에 영향력을 끼칠 수 없다.

훈련 없는 믿음은 견디지 못한다

우리는 흔들리는 세상 한가운데를 살아가고 있다. 혼란은 깊어지고, 진리의 기준은 흐려진다. 세상의 가치관은 점점 교회 안으로 스며들고 있고, 믿음은 감정이나 분위기에 좌우되며,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능력은 약해져 간다. 예배의 열정은 넘치지만, 삶에서의 순종은 부족하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훈련이 없기 때문이다.

훈련이란 반복을 통해 삶의 방향과 습관을 바꾸는 것이다. 스스로를 부인하고, 말씀 앞에 복종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에 귀 기울이는 삶은 결코 자연스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훈련을 통해 길러지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처음부터 믿음의 용사였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실패했고, 오해했고, 때로는 도망쳤지만, 예수님과 함께 걷고, 부르심에 반응하며, 다시 세워지는 과정을 통해 제자가 되어 갔다. 제자훈련은 그와 같은 여정이다. 완전해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연약한 모습 그대로 따라가면서 변화되는 과정이다.

실수와 넘어짐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고통이 있어도 멈추지 않으며,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단하는 삶. 제자훈련은 믿음을 ‘지식’으로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가 하나님의 통치 아래 다시 세워지는 영적 재편성의 시간이다.

나는 지금 제자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은 단지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내 삶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훈련되고 있는가? 나는 말씀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고 있는가? 관계 속에서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고 있는가? 세상의 가치보다 하나님 나라의 우선순위를 따라가고 있는가?

많은 성도들이 “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제자훈련은 준비된 자를 위한 길이 아니라, 준비되지 않은 사람을 세우시는 하나님의 방식이다. 훈련은 부족한 나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에 반응하는 시간이자, 지금도 나를 붙들고 계시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다. 내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부르셨기 때문에, 우리는 제자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지금 이 시대, 신앙이 흔들리고 진리가 조롱받는 시대에 교회가 제자훈련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결국 교회는 방향을 잃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교회 바깥의 세상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우리의 삶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이야말로 다시, 제자훈련을 말해야 할 때다.

제자훈련은 교회의 전략이 아니라, 복음의 본질이다

많은 교회가 한때 제자훈련을 전략으로 삼았고, 실제로 그 열매를 맺기도 했다. 그러나 제자훈련이 전략이 될 때, 우리는 종종 ‘시스템’에 집중하고 ‘사람’을 놓치기 쉽다. 본질은 전략이 아니라, 예수님의 방식이다. 예수님은 무리를 따라다닌 수천 명을 택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열두 명을 부르셨고, 그들과 함께 먹고 자며, 걸으며 가르치셨다. 그들의 실패를 품었고, 그들의 성장을 기다리셨다. 예수님의 사역은 제자훈련 그 자체였다. 따라서 오늘날 교회가 제자훈련을 다시 말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한 시스템의 회복이 아니라,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함이다.

복음은 듣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복음은 삶을 바꾸는 능력이고, 그 변화는 반드시 ‘훈련된 따름’으로 이어져야 한다. 제자훈련은 은혜에 반응하는 삶의 방식이며,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내기 위한 실제적인 도전이다.

오늘날 수많은 성도들이 신앙 안에서 ‘정체’ 혹은 ‘공허함’을 느끼는 이유는, 단지 말씀을 듣지 않아서가 아니라, 말씀을 살아내지 않기 때문이다. 제자훈련은 그 말씀을 삶으로 끌어내는 여정이다. 그 여정에는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고, 자신의 부족함이 드러나는 시간도 있지만, 그 모든 과정 안에 하나님은 일하신다. 제자훈련은 내가 예수님을 따르는 훈련인 동시에, 예수님이 나를 끝까지 붙드시는 사랑을 배우는 시간이다.

진짜 제자란 누구인가?

예수님은 오늘도 말씀하신다. “나를 따르라.” 이 음성은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 성경을 많이 아는 사람, 사역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다. 그 부르심은 지금도 평범한 성도를 향하고 있다. 제자는 거창한 사역의 타이틀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사람이다.

그 따름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작은 순종, 조용한 기도, 억울함을 참고 묵묵히 버티는 그 자리에서 우리는 제자가 되어간다. 예수님은 그 과정을 기뻐하시고, 끝까지 함께 걸어가신다. 훈련은 어렵지만, 그 훈련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더 선명하게 바라보게 된다.

더 나은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다시 제자훈련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 말씀 앞에 다시 서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묵상과 적용을 위한 질문
  1. 나는 지금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고 있는가?
  2. 내 신앙은 ‘말씀을 듣는 수준’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3.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주저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4. 하나님께서 지금 내 삶에서 훈련하시려는 영역은 어디라고 느껴지는가?
짧은 결단 기도

“주님, 제자훈련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제자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따르는 것이 어렵고, 훈련이 버거울 때도 있지만, 주님이 부르신 길이라면 걷겠습니다. 오늘도 말씀 앞에 서서, 다시 한 걸음을 내딛게 하소서.”

 

작성자: 이시온 | 매일말씀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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