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엔 예배, 평일엔 점집? 신앙과 미신의 경계가 무너진다

타로카페, 사주 앱, 별자리 운세 콘텐츠가 20~30대 청년층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놀라운 점은 그 열풍 속에 교회에 다니는 청년들도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타로카드를 펼치는 이 시대의 신앙 풍경은 우리에게 깊은 질문을 던진다. 과연 신앙은 주일의 고백만으로 충분한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고백은, 우리의 삶의 결정과 행동의 기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미신을 신앙의 보조 수단처럼 여기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지금 어떤 기준을 따라가고 있는가?

‘재미’로 시작된 습관, 혼합된 신앙으로 이어지다

“그냥 친구들이 하니까 같이 갔어요. 재밌기도 하고, 그냥 참고만 하려고요.” 서울에 거주하는 26세 대학원생 A씨는 평소 청년부 성경공부에 꾸준히 참여하고 예배도 성실히 드리는 신앙인이다. 그러나 그녀는 연애 문제나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때마다 자연스럽게 ‘타로 상담’을 찾는다. “기도도 하지만, 가끔은 확실한 답이 필요하잖아요?”라는 말은 단순한 변명이 아니라 이 시대 청년들의 내면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4년 종교실태조사에 따르면, 20~30대 응답자 중 59%가 “신앙을 가지면서도 운세나 타로 콘텐츠를 소비해 본 적 있다”고 밝혔다. 특히 유튜브 알고리즘은 개인의 관심사를 기반으로 ‘별자리 기반 운세’, ‘타로 리딩’, ‘MBTI+사주 궁합’ 등 콘텐츠를 자동 추천해준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신앙인의 세계관을 교묘하게 흔들고 있다. 처음에는 ‘호기심’이었다가, 나중에는 ‘의존’으로 변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처럼 신앙과 미신을 병행하는 현상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는 점이다. “주일엔 예배를 드리고, 평일엔 사주 콘텐츠를 보며 위안을 얻는 것”이 하나의 문화처럼 여겨지고 있다. 심지어 일부 기독 청년 유튜버들은 “타로도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도구”라며 영적 기준을 희석하는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결국 ‘하나님이 아닌 다른 기준’을 우선시하는 데서 비롯된다. 우리가 불안할 때 가장 먼저 찾는 것이 무엇인가? 결정 앞에서 신중히 기도하기보다 타인의 조언이나 미신적 정보에 더 의지하고 있다면, 이미 우리의 신앙 중심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단호하다. “너희는 복술을 하지 말며 술수를 행하지 말라”(레위기 19:26). “두 마음을 품은 자는 그 모든 길에 정함이 없는 자”(야고보서 1:8). 하나님은 단지 예배의 대상이 아니라, 삶 전체를 인도하시는 주권자이기 때문이다.

분별력을 위한 회복 – 교회와 가정, 그리고 나 자신부터

영적 혼합주의는 단지 외부 문화의 침투 때문만은 아니다. 교회와 가정 내부에서 ‘신앙의 기준’이 분명히 제시되지 않을 때, 청년들은 자연스럽게 다른 판단 기준을 찾아 나선다. 주일학교에서는 말씀을 배우지만, 평일엔 세상의 콘텐츠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예배 출석’만으로는 부족하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말씀을 따라 분별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청년부와 캠퍼스 사역 현장에서도 이 문제는 심각하게 다뤄져야 한다. ‘믿음’이라는 이름 아래에 정보 소비의 자유를 무제한 허용할 경우, 신앙은 곧 선택적 동의의 문제가 된다. “말씀은 믿지만, 삶은 내 방식대로”라는 사고방식이 자리 잡으면, 신앙은 곧 현실에서 힘을 잃게 된다. 말씀은 삶을 재단하는 도구가 아니라, 삶 자체를 지탱하는 뿌리여야 한다.

이러한 흐름에서 가정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믿음을 강요하기보다, ‘왜 믿는가’를 함께 고민하고 설명해주는 태도가 중요하다. 단순히 “하지 마라”는 금지보다, “왜 하나님만이 진리인가”를 설명하는 대화가 필요하다. 자녀의 스마트폰 콘텐츠를 점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함께 기도하며 말씀을 나누는 일상이다.

또한 교회는 이 시대 청년들의 갈증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많은 청년들이 타로를 찾는 이유는 ‘불안’ 때문이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고, 현실은 복잡하고 빠르게 돌아간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라는 질문보다 “내가 손해 보지 않을 방법은 뭘까”를 먼저 고민하게 된다. 그렇기에 교회는 ‘기도 응답’을 재빠른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믿음의 여정’으로 설명해주어야 한다.

신앙은 단지 감정의 위로가 아니다. 그것은 삶을 결정짓는 기준이며, 인생을 책임지는 믿음의 실체다. 예배당을 나선 순간부터 그 신앙은 검증되기 시작한다. 내가 어떤 콘텐츠를 소비하는가, 어떤 말에 귀를 기울이는가, 어떤 조언에 마음이 흔들리는가—이 모든 것이 ‘누구를 믿는가’에 대한 실질적인 증거다.

지금 이 시대는 ‘가벼운 신앙’이 유혹받기 쉬운 시대다. 믿음을 고백하면서도 불안을 외면하지 못하고, 기도하면서도 점괘를 참조하는 삶. 그것은 결국 하나님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신뢰하고 있는 상태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가, 아니면 ‘하나님도 믿는’ 삶을 살고 있는가?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이사야 43:1). 이 말씀이 단지 위로가 아니라 실질적인 소속과 방향이 되려면, 우리는 매일같이 삶의 선택 앞에서 이 질문을 반복해야 한다. “나는 지금 누구의 음성을 따르고 있는가?”

믿음은 순간의 고백이 아니다. 그것은 반복되는 선택이며, 방향의 누적이다. 타로가 아닌 말씀을, 운세가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작은 결단들이 쌓일 때, 우리의 삶은 비로소 ‘분명한 신앙’으로 세워지게 된다.

매일말씀저널 | 오늘의 세상, 말씀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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