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 ‘지옥’이라는 단어는 점점 설 자리와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많은 이들이 그것을 중세적 공포심의 산물로 치부하거나, 과격한 종교인의 경고로 여긴다. 교회 안에서도 지옥은 조심스럽게 언급되거나, 아예 회피되는 주제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성경은 지옥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분명하고, 자주 말하고 있다.
예수님은 사랑을 가르치신 분이지만, 동시에 지옥에 대해 가장 많이 언급하신 분이기도 하다. 그분은 단순히 상징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영원한 형벌의 장소’로서 지옥을 말씀하셨다. 이번 기사에서는 지옥의 성경적 정의, 특성, 존재 이유, 그리고 신자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깊이 있게 탐구해 본다.
지옥,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성경에서 ‘지옥’을 나타내는 단어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구약에서는 ‘스올(Sheol)’이라는 말이 쓰였으며, 이는 일반적으로 죽은 자들의 거처, 무덤을 의미하지만 문맥에 따라 형벌의 장소로도 이해된다.
신약에서는 ‘하데스(Hades)’가 동일하게 무덤 혹은 중간 상태를 의미하고, ‘게헨나(Gehenna)’가 본격적인 지옥의 개념으로 사용된다. 예수님은 이 ‘게헨나’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셨는데, 이는 예루살렘 남쪽의 흰놀이 골짜기에서 유래한 말로, 과거 우상 숭배와 불로 태우는 제사가 이루어졌던 장소였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0:28에서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지옥은 단순한 사후의 고통이 아니라, 영혼과 육체 모두가 영원히 형벌받는 실재적 장소로 제시된다. 이 외에도 마태복음 25장,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나사로 비유 등에서 예수님은 지옥의 실존과 공포, 돌이킬 수 없는 최후의 결과로서 지옥을 강조하신다.
지옥은 어떤 장소인가 – 형벌의 성격
성경이 묘사하는 지옥은 단순히 불이 타는 장소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요한계시록 20:14은 지옥을 “불못”이라 부른다.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이것은 단순한 신체적 고통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상태, 영원한 소외와 거절의 장소다. 마가복음 9:48은 “그 벌레도 죽지 아니하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고 말한다. 이는 지속적이고 끝나지 않는 고통을 강조한다.
지옥의 고통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영원성: 마태복음 25:46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고 말하며, 천국과 지옥 모두 동일한 영원성을 가진다고 선포한다.
의식 있는 고통: 누가복음 16장의 부자는 자신의 고통을 인식하고, 기억하며, 형제들을 위해 누군가를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이는 지옥의 고통이 무감각하거나 무의식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
회복 불가능성: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놓여 있어 건널 수 없다.”(눅 16:26) 지옥은 한 번 들어가면 되돌아올 수 없는 장소다.
하나님의 공의의 결과: 지옥은 하나님의 분노의 결과가 아니라, 공의의 필연이다. 죄가 심판받아야 한다면, 지옥은 그 최후의 자리다.
왜 지옥이 존재해야 하는가 – 하나님의 공의
많은 이들이 지옥에 대해 반발하는 이유는 “사랑의 하나님이 왜 그런 형벌을 만드셨는가”라는 질문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질문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를 간과한 반쪽짜리 이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동시에 공의로우신 분이다.
죄는 반드시 심판받아야 하며, 그 심판이 없다면 하나님은 더 이상 거룩하지 않다. 악한 자가 심판받지 않고 끝난다면, 온 세상은 정의를 잃는다.
성경은 반복해서 말한다. “죄의 삯은 사망”(롬 6:23), “하나님은 의로우사 행위대로 갚으신다”(롬 2:6). 지옥은 하나님의 분노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 죄가 당연히 받아야 할 결과다. 또한 하나님은 아무도 지옥에 보내지 않으시려 오히려 독생자를 보내셨다. 지옥은 하나님의 선택이 아니라, 인간의 거절로 인해 도달하는 결과다.
예수님이 지옥에 대해 말씀하신 이유
예수님은 지옥을 누구보다도 자주, 그리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이는 공포심을 조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구원의 절박함을 강조하시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은 지옥의 실제성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그 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복음을 선포하셨다.
마태복음 5장에서 주님은 죄를 짓게 하는 손과 눈을 차라리 빼어버리는 것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낫다고 하셨다. 이는 죄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말씀이며, 지옥이 단지 상징이 아님을 보여준다.
또한 누가복음 13장에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권면하셨고, 많은 사람들이 나중에 문 밖에 서서 두드리지만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 장면을 보여주신다. 예수님은 우리가 지옥을 잊지 말고, 지금 이 순간 구원의 문을 두드릴 것을 촉구하신다. 이것이 복음의 절박함이고, 심판의 진실성이다.
지옥은 누구를 위한 장소인가
성경은 원래 지옥이 “마귀와 그의 사자들”을 위해 예비된 곳이라고 말한다(마 25:41). 다시 말해, 지옥은 인간을 위해 창조된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 반역한 천사들을 위한 심판의 장소였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의 구원을 거절하고, 자발적으로 죄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동일한 결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누구도 지옥에 가기를 원치 않으신다. 베드로후서 3:9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지옥은 하나님의 무자비함이 아니라, 인간의 자발적인 반항과 완고함의 최종 결과다. 복음을 거절하는 이들은 자신의 죄로 인해 지옥에 이르게 된다. 그들은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았고, 결국 하나님이 그들의 선택을 ‘영원히 허락’하시는 것이다.
지옥이 주는 현재의 의미
지옥에 대한 이해는 단지 미래를 준비하는 차원을 넘어, 지금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게 만든다. 지옥의 존재는 우리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도록 경고하며, 복음 전파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지옥에 간다는 생각은 우리를 복음 전도의 자리로 이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살아가도록 만들며, 매일의 선택에서 거룩함을 추구하게 한다.
지옥은 단지 ‘무서운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함과 복음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은 단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음이 아니라, 지옥에서 건짐받았다는 사실을 포함한다.
이 은혜는 그저 고마운 정도가 아니라, 감격하고 경외해야 할 수준이다. 우리가 매일 예배하고 찬양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의 피가 나 대신 지옥을 막아주셨기 때문이다.
지옥은 존재한다. 그리고 복음은 유일한 길이다.
지옥은 성경 속의 경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에 기반한 최후의 선언이다. 세상은 이를 부정하거나 회피하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한결같다.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계 20:15) 이것은 상징이 아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지옥의 실재를 경고하시고, 동시에 복음으로 그 길에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심판을 받으셨고, 누구든지 그 이름을 믿는 자는 지옥이 아닌 생명으로 인도받는다.
오늘 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다.
지옥이 존재하기에, 복음은 절실하다. 지옥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이는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서 9:27)
오늘, 그 심판을 준비하라.
그리고 그 심판을 이길 수 있는 은혜 안으로 들어오라.
지옥을 믿는 사람만이 복음을 진심으로 붙든다.
작성자: 이시온 | 매일말씀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