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있다고 해서 눈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만 감정은 여전히 흔들린다. 어떤 날은 예배 가운데 눈물이 흐르지만, 어떤 날은 아무 감정 없이 찬양의 입술조차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는 종종 그런 감정의 부침 앞에서 자신을 의심하고, 신앙이 부족하다는 정죄에 빠진다.
그러나 성경을 들여다보면, 하나님은 감정 자체를 죄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감정을 어떻게 다스리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였고, 믿음은 감정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선택이었다.
감정은 통제해야 할 대상이지 제거해야 할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흔히 신앙이 강할수록 평정심을 잃지 않을 것이라 기대한다. 늘 기쁘고 감사하며, 화도 내지 않고, 낙심도 하지 않아야 신실한 신자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묘사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쓰임 받았던 인물들조차 감정의 폭풍을 겪었다. 다윗은 “내 영혼이 깊은 수렁에 빠졌나이다”라고 고백했고,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구했다.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라 불릴 만큼 통곡했고,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죽을 만큼 괴로워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의 감정을 나무라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 감정 속에서도 하나님을 부른 그들을 귀히 여기셨다. 문제는 감정이 아니다. 문제는 감정이 삶을 끌고 가게 둘 때다.
분노로 인해 관계를 끊고, 절망으로 인해 기도를 포기하고, 질투로 인해 미움을 선택한다면 감정은 죄의 문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창세기 4장에서 가인에게 “죄가 문에 엎드려 있으나 너는 그것을 다스릴지니라”라고 명확히 말씀하신다. 감정이 죄가 아니지만, 감정이 통제되지 않으면 죄로 발전한다. 다스림 없는 감정은 결국 파괴로 이어지고 만다.
감정은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서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진짜 나”는 내가 느끼는 것이라고 말하고, 감정을 따르는 것이 가장 정직한 삶이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감정은 언제나 진실하지 않다. 어떤 감정은 과거의 상처에 의해 왜곡되어 있고, 어떤 감정은 두려움과 피로에서 비롯된 일시적인 반응일 뿐이다. 성경은 말한다.
“마음은 모든 것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라.” 감정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다. 감정을 그대로 따르기 전에, 말씀을 기준으로 해석하고 다스리라는 것이다. 감정은 본능이고, 신앙은 선택이다. 본능이 올라올 때 신앙으로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성숙한 신자다.
우리는 종종 감정을 억누르거나 무시하려고 한다. 그러나 억누른 감정은 반드시 다른 형태로 터져 나온다. 차라리 시편의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 감정을 쏟아내야 한다. “내가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밤마다 애통하나이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만큼은 진실했고, 감정의 실체를 숨기지 않았다.
그런 다윗을 하나님은 ‘마음에 합한 자’라 부르셨다. 기도는 정답을 말하는 시간이 아니라, 감정을 드리는 시간이다. 예배는 감정을 감추는 자리가 아니라, 감정을 진실하게 올려드리는 자리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말씀으로 감정을 다스리는 힘을 주신다.
감정 위에 서는 삶, 말씀 아래 서는 믿음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하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생각은 단지 논리적 개념이나 지적 사고만이 아니다. 우리의 감정과 태도, 기억과 욕망도 모두 그리스도께 복종되어야 한다. 복종이란 억지로 꾹 누른다는 뜻이 아니라, 말씀이 기준이 되는 삶을 의미한다.
나는 지금 슬프지만, 말씀은 “나는 너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한다. 나는 지금 분노하지만, 말씀은 “네게 원수가 있거든 용서하라”고 말한다. 나는 지금 낙심하지만, 말씀은 “내가 너를 붙들리라”고 선포한다. 이처럼 감정을 다스리는 힘은 내 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권위인 하나님의 말씀에서 시작된다.
오늘 당신의 감정은 어떤가. 혹시 설명되지 않는 불안과, 말하지 못한 분노, 풀리지 않는 상처 속에서 혼자 싸우고 있지는 않은가. 그런 감정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다만 그 감정을 말씀 없이 처리하려 하지 말라. 말씀 없이 처리된 감정은 대부분 죄가 되고, 불신이 되며, 관계를 끊는다.
그러나 말씀 앞에 나온 감정은 회복되고, 사용되며, 증거가 된다. 예수님은 십자가 앞에서도 마음이 심히 고민되어 죽을 지경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결국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신앙의 결정으로 감정을 이겨내셨다. 그분은 감정이 없어서 순종하신 것이 아니라, 감정보다 크신 말씀을 선택하셨기 때문에 구원의 길을 완성하셨다.
신앙생활은 감정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감정을 말씀 아래 두는 훈련이다. 오늘도 우리 안에는 수많은 감정이 올라온다. 그 감정이 곧 내 믿음의 기준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매일 말씀 앞에 서야 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으로 우리의 감정을 다스리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은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
작성자: 이시온 | 매일말씀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