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가장 자주 사용하면서도, 가장 자주 오해하는 시대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는 것이라고 말하고, 사랑은 판단하지 않는 것이라 가르친다. 사랑은 자유를 주는 것이고, 사랑은 허용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죄를 침묵하게 만들고, ‘사랑’이라는 말로 어떤 기준도 세우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과연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그런 것인가? 성경은 ‘사랑’과 ‘진리’를 결코 분리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리가 없는 사랑은 타협이고, 거짓 위에 세워진 허상에 불과하다.
요한복음 1장 14절은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한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님 안에는 은혜가 있었고, 동시에 진리가 있었다. 그분은 죄인을 품으셨지만 죄를 용납하지 않으셨고, 죄인에게 다가가셨지만 죄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사랑은 죄인을 정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회개로 이끄는 사랑이었다.
요한복음 8장의 간음한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신 후, 예수님은 반드시 덧붙이셨다.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사랑은 곧장 진리로 이어졌다. 오늘날의 문제는 이 후반부를 지워버린 사랑만을 강조한다는 데 있다
사랑은 기준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다
지금 많은 문화는 사랑을 기준 위에 둔다. “사랑하니까 이해해야지”, “사랑하니까 받아줘야지”, “사랑하니까 판단하지 마”라는 구호는 사회적 도덕의 가장 앞줄에 서 있다.
그러나 그런 흐름은 사랑의 이름으로 죄를 정당화하는 결과를 만든다. 성경이 분명히 말하는 기준조차 ‘사랑’이라는 명분 아래 희석되고, 교회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프레임에 갇힌다. 그러나 참된 사랑은 기준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기준 안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
그러나 우리를 있는 그 모습 그대로 두지는 않으신다. 사랑은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사랑은 변화를 거부하는 자유가 아니라, 변화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이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하나님은 동시에 “나는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명령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의 사랑은 거룩을 요구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십자가를 통해 죄를 대속하신 사랑이지, 죄를 무시하신 사랑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랑이라는 이유로 죄를 말하지 않는 것은, 사실은 사랑이 아니다.
진짜 사랑은 진리를 전하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사랑은 불편함을 감수한다. 사랑은 거절당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한다. 왜냐하면 그 진리가 영혼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 없는 진리는 독이 되고, 진리 없는 사랑은 기만이 된다
성경은 진리와 사랑을 함께 붙들라고 말한다. 에베소서 4장 15절은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고 말한다. 여기서 참된 것, 곧 진리는 사랑 안에서만 의미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사랑도 진리 안에서만 빛을 발한다.
사랑 없는 진리는 칼이 되고, 진리 없는 사랑은 독이 된다. 오늘날 교회가 사회로부터 멀어지는 이유는 진리를 말하면서 사랑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랑을 말하면서 진리를 포기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두 극단은 모두 복음이 아니다.
예수님은 사랑으로 죄인을 부르셨고, 진리로 그들을 변화시키셨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순서다. 품되, 진리를 말하고. 수용하되, 회개를 요청하고. 기다리되, 기준을 지키는 것. 그것이 성경이 보여주는 사랑의 구조다. 지금의 시대는 감정과 수용을 우선한다. 그러나 성경은 회개와 순종을 우선한다.
이 둘은 결코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리 안에 있을 때 비로소 사랑은 그 깊이를 가지며, 사랑 안에 있을 때 진리는 생명을 살리는 능력이 된다.
신자는 어떤 사랑을 선택할 것인가
신자의 삶은 이 질문 앞에 선다. “나는 지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죄를 외면하고 있는가?”, “나는 진리를 말한다는 이유로 사랑을 잃고 있는가?”, “나는 예수님처럼 사랑과 진리를 함께 말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단지 목회자나 전도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신자는 진리를 증거해야 할 사명자이며, 사랑으로 그것을 전할 책임이 있다. 세상은 지금 사랑을 외친다. 그러나 그 사랑이 하나님 없는 사랑이라면, 그것은 결국 인간 중심의 허상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말씀이라는 기준 위에서, 진리라는 중심 안에서, 거룩한 사랑을 회복해야 한다. 거룩한 사랑은 판단이 아니라 구원을 위한 외침이다.
세상은 오해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억하신다. “진리를 말하는 자를 나는 기뻐한다.” 우리가 사랑이라는 이유로 침묵하지 않고, 사랑이라는 이유로 말씀을 전할 때, 하나님은 그 자리를 복음의 통로로 삼으실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결국 영혼을 살리는 능력이 될 것이다.
작성자: 이시온 | 매일말씀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