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신뢰하세요.”
신앙 안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지만, 정작 ‘신뢰한다’는 말의 실제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막연해진다. 기도는 한다. 예배도 드린다. 말씀도 듣는다. 그런데도 여전히 불안하다. 왜 그럴까. 입술로는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고백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내가 통제하고 싶은 영역’을 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뢰는 단순히 믿는다는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그 믿음을 행동으로 옮겨 ‘맡기는 것’까지 포함한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결과가 보장되지 않아도, 여전히 그분께 모든 것을 내어드리는 태도.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신뢰의 실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바치라고 명령하셨을 때,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했다. 왜냐고 묻고 싶었겠지만 하나님은 답하지 않으셨고, 그는 다만 순종했다. 히브리서 11장은 그것을 ‘믿음’이라 기록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확신이 아니라 행위로 이어진 신뢰의 결단이었다. 신뢰는 이해 뒤에 오는 반응이 아니다.
많은 사람은 “하나님, 설명해 주시면 따르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대부분의 경우 우리에게 설명하지 않으신다. 신뢰는 하나님이 설명해주기 때문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선하신 분임을 믿기 때문에 따르는 것이다. 설명을 요구하지 않고, 그 뜻이 내 삶에서 드러나기를 기다리는 것. 그것이 신뢰다.
신뢰는 마음속의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태도다.
내가 조정하고 싶던 계획을 하나님께 맡기고, 내가 통제하려던 미래를 그분의 손에 올려드리는 실제적인 선택이 수반된다. 많은 이들이 입으로는 신뢰를 고백하지만 삶에서는 여전히 자신의 방식과 계산을 놓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기도조차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고백이 아니라, 내 계획에 하나님의 승인을 구하는 요청이 되곤 한다.
다윗은 사울을 제거할 수 있는 기회를 두 번이나 가졌지만, 그 손을 들지 않았다. 그가 신뢰한 것은 자신의 명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였다. 신뢰란 할 수 있어도 하지 않는 절제, 결과를 미리 만들지 않고 기다리는 인내,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결단이다.
신뢰는 결과를 바꾸는 도구가 아니다.
신뢰는 결과가 바뀌지 않아도 평안을 유지하게 하는 능력이다. 하박국 선지자는 무화과나무의 열매도, 외양간의 소도 없다고 고백하면서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다”라고 말한다. 그것이 신뢰다. 결과에 상관없이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믿음, 내가 알 수 없어도 하나님은 알고 계시고, 내가 보지 못해도 하나님은 인도하신다는 확신. 그것이 진짜 신뢰다.
신앙은 성과를 바탕으로 한 계산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결정으로 세워지는 삶이다. 그러므로 진짜 신뢰는 감정이 아니라 결단이며, 그 결단은 반드시 행동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말은 결국 ‘나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신다’는 겸손에서 시작한다.
내 통제를 내려놓고, 내 생각보다 더 높은 뜻이 있음을 믿으며, 주님의 손을 따라 걷는 것이다. 신뢰는 결코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불안과 예측을 하나님의 주권 아래 내려놓는 능동적인 믿음이다.
하나님은 신뢰하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에게 반드시 당신의 뜻을 나타내시고, 선하심을 증명하신다. 그러므로 오늘의 삶 속에서 우리가 진짜로 할 수 있는 고백은 단 하나다. “주님, 저는 알지 못하지만, 당신을 믿습니다.”
작성자: 이시온 | 매일말씀저널